유치하나 효험 만점 사랑연장법 하나(15.01.13) 내 사랑은 숨이 가빠서 나는 먼 날을 기약하지 못하겠다 당신이 보이는 만큼만 나는 사랑할 거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 나의 할머니는 수명을 연장하는 비방이 있어 결국 꽤 장수를 하신 편이다. 나 어렸을 때부터 습관처럼 막내손주가 장가가는 날까지, 혹은 증손주 보는 날까지 뭐 이런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13
결핍(15.01.12) 의지가지 없이 외로운 길을 나서본 적이 없고 귀뺨을 억울하게 얻어 맞아본 적이 없고 먹고 사는 일이 지겹긴 했어도 만두솥에서 오르는 김에 영혼이라도 팔아볼 수 있겠다 주려본 적 없고 당신 아니면 죽을 것 같소 목숨 걸고 사랑해 본 적이 없고 발을 동동 거릴 만큼 애가 닳는 소망을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12
시를 외우는 아이들(15.01.12) 시를 어디에 써먹느냐는 아이들이 수행평가 때문에 시를 외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써먹어 보지 않은 단어와 화법 뻔한 얘기를 참 어렵게도 말한다 퉁퉁 거리며 아이들은 아, 닭살, 몸서리를 치지만 맥락이 없던 파편 같던 단어들이 어느 결에 수줍은 리듬을 타고 있고 이봐, 당신, 시비를..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12
내 비굴의 일례(15.01.12) 대개는 우울을 허세로 은폐할 만큼은 축복받은 내 천성적 명랑이 제 힘을 발휘하지만 어느 날은 그 축복도 힘에 부치게 내 삶이 너무 비굴한 때가 있다. 그런 날, 내게 기대지 않고는 하루도 온전한 삶을 꾸리지 못할 내 고양이는 내 숨결 반경 이내로는 절대 들어서지 않을 양 주위만 맴..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12
슬픈 상상 하나(15.01.08) 쏟아지는 달빛 아래서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습자지처럼 푸른 그림자가 마음에 젖지 않았다 내 웃음에 무참히 부러져 쌓이는 달빛, 나는 거침없이 순결한 달빛을 희롱했다 봄의 왈츠를 추듯 들뜬 걸음으로 깊어야 좋을, 적막한 마음 만큼 깊어져야 할 밤의 정적을 나는 오만방자하게 휘..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08
즐거운 상상 하나-맞춤 애인(15.01.06) 세상의 뜨거운 피를 가진 남자는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이제 몇날 며칠 몇달을 공들여 남자 하나를 빚겠다. 내가 상냥하지 않다며, 내가 게으르다며, 내가 못생겼다며, 바람을 쉬이 타 불안하다며, 술을 못 마신다며 나를 싫어하기 위한 갖은 구실을 들이대며 곁을 주지 않는 남..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06
새해 첫날 날밤 샌 과제(15.01.04) 새해 첫날이 무색하게 나는 낮잠을 잘 것이었다. 새해 새벽 다섯시 반이었고, 나는 미처 새해 소망을 정하지 못해서 어제와는 다른 소망을 생각하며 앉아 있었고 끝끝내 숙제를 마치지 못한다면 별 수 없이 어제처럼 시무룩해서는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자야 할 것이었다. 자는 내 모습이..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1.04
섣달 그믐 전날, 이별 각본 하나(14.12.30) 진력이 날대로 나서 이제 이별해야겠다 너를 생각하면 신물도 나고 쓴물도 올라올만큼 물려 안되었지만 구토도 몇 번 해야겠다 너를 생각하면 입덧처럼 올라오는 구역질 우아한 이별을 꿈꾸지 말 것이다 닳고 닳아 허접해지고 바닥을 친 우리 사랑에 벅벅 분칠하고 있는 스스로가 처량.. 다시 새겨볼 마음 2014.12.30
추억이라는 못 믿을(14.12.26) 날마다 사라지는 양말짝이며 심지어 속옷까지. 무심한 내가 인지할 만큼 무엇인가가 꾸준히 사라져가고 있다. 손톱깎기나 손수건, 심지어는 티셔츠 같은 부피 있는 것까지 어느 구석으로 숨어드는지 도통 모르겠다. 천장을 뛰던 쥐도 세스코에서 감쪽같이 근절시켜 주었고 집칸이나 되.. 다시 새겨볼 마음 2014.12.26
파쇄(14.12.24) 파쇄기를 애용한다 기밀문서를 다루냐고? 그럴리는 없다 나에 걸맞게 하잘것 없는 일들 뿐 보안등급 매길 일이 하등 없는데 보통명사나 다름없는 이름 석자만 들어 있어도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파쇄기에 먹인다 모든 것을 무의미로 치환하는 신묘한 기계 과연 무자비한 절대자, 감탄과 .. 다시 새겨볼 마음 201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