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12.04.13) 십일월에 들어와 살리라던 사람들은 끝내 오지 않았고 긴 겨울지나 봄이 반이나 지났는데도 누가 온다는 기약이 없다. 사람의 온기를 잃은 집은 수선화처럼 환한 봄볕 아래에서도 어둡고 춥다. 주인 없는 뜰에도 꽃이 피었다. 워낙이도 알뜰하던 옛주인의 손길을 기억하는지 뜰에는 섣불..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4.13
꽃에 놀라다(12.04.13) 정신없이 골아 떯어졌다가 화들짝 놀라 깬 새벽, 내 머릿 속에 산벛꽃이 환하다. 꽃에 이리도 놀라다니. 꿈 속에서 꽃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나는 말했다, 참 곱기도 하다. 꿈 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으나 내 앞에 벙그러진 꽃에 넋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헤프게 웃고 있었다.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4.13
기다리다(12.04.12) 꽃을 찾아가지 않겠다 습자지가 젖어들듯 꽃그림자가 내 발밑에 드리워질 때까지 길잃은 아이처럼 꽃나무 아래 서서 기다리겠다 기다렸더니 꽃은 피고 꽃잎은 뚝뚝 섧게 져서 나또한 그렇게 져버렸으면. 내손에 움켜야 내 것인 줄 알아 하여 사나운 매처럼 나꾸려고만 하였다 가끔은 가..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4.13
당신이 잠자는 사이(12.04.06) 어제, 그제 이틀을 혼절한 듯 일찍 잠이 들었다. 마치 기면증 환자처럼. 깊은 잠 끝에 거짓말처럼 홀연 깨어선 조금 슬폈다. 새벽 서 너시 사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을 홀로 서성이는 것이 외로운 일이 되었다. 홀로 깨어있다는 것이 마냥 뿌듯하고 흥겨웠는데, 이제 그 시절이 끝나 ..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4.06
내 불행의 이유(12.03.30) 나는 매처럼 사람을 관찰하고 내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순식간이고 쉽게 용서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연민스러워 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인간으로부터 최종적으로는 비루함을 추출해내는 사람이다. 언덕위, 혹은 바닷가 외진 교회당처럼 외로운 사람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3.30
gloomy...(12.03.29) 삶의 근거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비극이 시작되는 거다. 그냥 생존하는 거라고 순순히 인정하고 들어갈 일이다. 인간이라서 다른 동물하고 다른 점은 치환해보면 결국 한가지, 먹고 사는 일일진데, 거기에 시시콜콜 구실을 붙이는 일일 것이다. 하기 싫은 일에 치를 떠는 동료는 왜 그만 .. 다시 새겨볼 마음 2012.03.29
잠시 머무는 집 두 양주,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세월이 되어 눈물바람하며 가난한 자식에게로 떠나갔다. 하여, 가난한 삶처럼 미미하던 등이 그나마 꺼지고 빈집은 사랑잃은 내 마음보다 더욱 쓸쓸했다. 빈집은 저 홀로 야위어갔다. 어느날, 사람이 깃들었다. 사는게 번듯한 사람은 아닐테니 살림도.. 다시 새겨볼 마음 2008.01.13
(1)옅들은 사랑얘기 이제 스물서넛이나 되었을까 그 아가씨 참 곱기도 하다 그 여름 새벽길 연향이 그리워 이슬길을 걸었단다 낮게 깔린 적막의 안개를 조심스레 밀어내며 연향이 고와 기쁘고 슬펐단다 숨죽여 속울음을 울었단다 그 아가씨, 늦은 밤이면 못을 밝히는 점점, 푸른 등을 비켜 어둠 속에서 연꽃.. 다시 새겨볼 마음 200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