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은 없다(18.7.16) 앞집이 빈 지 여러 해다. 작은 집을 반들반들하게 가꾸던 아주머니가 허리가 아파 집을 팔고 멀리 아들한테로 떠날 때 나는 이 집이 이렇게 오래도록 빈 채로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아주머니가 사실 땐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 없던 앞뜰, 뒷뜰이 이제 처참하고 처연하다. 가지를 다듬지 않.. 단상 2018.07.17
금강 변(18.6월 중순, 비오는 7월 초순) 가끔 둑위에 서서 금강변 너른 벌을 내려다 보는 때가 있다. 강을 따라 가없이 이어지는 들판의 사계절을 목도하게 되는 건데, 내게 가장 감격스럽고 가슴 충일해지는 때는 여름이 독하게 무르익는 조금 전, 유월인 듯 하다. 저 푸르름 앞에서 달리 무슨 비애나 설움이 있을 수 있으랴. 잠.. 단상 2018.07.17
일품요리-돼지밥같은(18.1.30) 나의 요즘 주식은 죄다 꿀꿀이죽 형상. 우선 모든 국은 일단 육수를 낸다. 요즘 젤 자주 하는 국. 냉장고를 스캔한다. 무토막이 있으니 얇게 썰어 넣어 무국 모양을 낸다. 김칫국에 쓰고 남은 콩나물이 조금 있어 콩나물을 추가한다. 고기를 안먹으니 대신 단백질 보충을 위해 냉장고에 상.. 단상 2018.01.30
사라지는 명사(2018.1.29) 동아리에서 만나 친해지고 있는 이가 한 명 있다. 올해 새로이 결심한 것이 독서하는 일이라며 나에게 적당한 책을 빌려 달라고 했다. 교회에 엄청 헌신하는 인데, 올해는 성경 말고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다고 한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싶어 비교적 잘 읽히는 걸로 한 주 한 권씩 가.. 단상 2018.01.30
모처럼 상념에 잠긴 날(17.8.23) 텔레비전에서 Eliot Smith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오랜 만에 귀에 익은 그의 노래 몇 곡을 듣는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예전에 그의 노래를 들으며 당연히 그러려니 여겼던 것처럼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이른 나이에 의문의 죽음이, 노래가, 음색이 나를 우울하게 .. 단상 2017.08.23
영혼이 있다고? 고단하구나(17.8.22) 모임의 멤버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다. 물론 진지하게 전교를 한다든가 하는 일로 부담을 주는 일는 전혀 없다. 아주 가끔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농담처럼, '예수님이 계시잖아' 하고 말할 뿐이다. 그쯤이야. 고맙기도 하다. 오죽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싶은데, 혹시라도 벗들이 불편.. 단상 2017.08.22
파티의 호스테스가 되었다(17.8.7) 오래 알고 지내던 이들을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모처럼 집이 여나믄 명의 손님으로 왁자했다. 집에서 이런 식으로 손님을 치른 일이 언제가 마지막었던가. 월드컵 때 집이 왁자했었고 그 다음부턴 이렇게 많은 손님을 맞았던 기억이 없으니 마지막 파티는 십오년 전이었는지도 모르겠.. 단상 2017.08.09
훗날 길에 선 나를 보면(17.3.4) 훗날에 아직도 길에 서 있는 나를 보거든 깊은 한숨 한 번 쉬어 줄텐가 못내 내가 마음에 걸려 밤 깊어 기도는 해줄텐가 단상 2017.03.04
기꺼이 자탄하지(17.1.26) 돌아보니 내 삶을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으로 살아온 듯 해 흡족하진 않지만 남과 비하면 크게 실패한 것은 아닌듯 한데 악착같이 변변찮은 내 삶의 영토를 잠식당하지 않으려 핏대를 올리며 악다구니를 벌이고 움칠 만한 공간을 위해 실랑이를 벌이며 살았어 자만과 착각이겠지만 다행.. 단상 201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