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멤버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다.
물론 진지하게 전교를 한다든가 하는 일로 부담을 주는 일는 전혀 없다.
아주 가끔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농담처럼, '예수님이 계시잖아' 하고 말할 뿐이다. 그쯤이야.
고맙기도 하다. 오죽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싶은데, 혹시라도 벗들이 불편할까 배려하는 마음이.
엊그제 그 드문 종교적 발언이 있었다.
하느님이나 예수가 아닌 영혼이란 단어를 통해.
몸이 죽은 뒤의 영원히 죽지 않을 영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믿지도 않으니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례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고질적인 방어본능을 감추진 못한 것 같다.
"죽지 않는 영혼은 생각만 해도 고단한데." 나의 잘난 말이다.
영혼을 있다고 믿으면, 즉 신이 있다면 나는 지옥불로 떨어질테니 나는 무조건 손해다. 그래서 없다고 우겨 없애야 한다.
영혼이 있다면 믿는 이들이 그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물리법칙이 설명하는 공간 어디에 있을까?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살까 현생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그렇나 만져지지 않는 그림자나 연기같은 걸까 나는
유치하기 짝이 없게 그려보긴 하는데, 내게 그리도 막막한 영혼의 세계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어쩌면 그리도 명쾌할까.
내가 유물론자이긴 하지만 사실 영혼이나 마음의 문제는 나에게도 불가지의 영역이다. 안 그렇겠는가.
머릿 속 물질이 빚어내는 그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오묘한 사고와 마음과 감정들. 생각할 수록 신비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영의 존재 여부를 가지고 나는 고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혼 대신에 나는 뇌를 믿는다. 두개골 속의 그 뇌라는 것을 믿는다.
영생의 영혼이 있어서 혹은 없어서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가. 내게는 별 의미 없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순간순간을 반사처럼 살아내는 것도 힘드는 것이다.
영혼을 믿지 않아 내 삶이 이 따위인 것은 아닐 터다. 마찬가지로 내 쭈그러진 영혼을 믿어 내 삶이 빛나지도 않을 것이다.
혹시 신이 있다면 내 육신이 죽은 뒤에 나의 영혼을 벌 주지도 말고 구원하지도 말며 이 생에서처럼 어둔 길을 헤매지 않게
소멸시켜 버리기를 기도한다. 몸과 마찬가지로 ash to ash. 그렇다면 정말 고마운, 믿고 싶은 신이다.
.................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광고지가 끼어 있어 보니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의 광고가 있다. (광고지 뒷면에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광고가 있다. ㅎ) 검색해 보니 하바드 뇌과학자(오호, 이력만으로 설득력 쩔겠다)의 임사체험 같은 거다. 아, 전에 예스 24에서 본 기억이 난다.
천국을 경험했다는데..., so what?
나의 신앙은 다른 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암케나 살아도 그런 아름다운 세상에 들 수 있나?
그렇다면 영혼존재를 믿는 효용이 없는 것이니 나는 지옥에 떨어질 터, 내 생존 방법은 영혼 혹은 신을 섬멸하는 길 밖에 없겠다.
다음 생은 고사하고 나는 지금 내 발밑의 땅이라도 제대로, 단단히 딛고 살았으면 좋겠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봐. 한 번 해 봐. 쉬워." 어제 읽은 유발 하라리의 책 한 귀절인데, 존 레논의 "Imagine"을 이렇게 웃기게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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