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내던 이들을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모처럼 집이 여나믄 명의 손님으로 왁자했다.
집에서 이런 식으로 손님을 치른 일이 언제가 마지막었던가.
월드컵 때 집이 왁자했었고 그 다음부턴 이렇게 많은 손님을 맞았던 기억이 없으니
마지막 파티는 십오년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흥겨운 파티였다.
이렇게 거창해질 줄 모르고 벌인 일이었다.
삼십년 넘는 오랜 지인 한 분이 음주 모임을 바람잡았고 남편이 우리집을 장소로 제공하겠다 했다.
그 분(들)은 경우 바른 현대인 답게 응당 식사는 밖에서, 다만 술자리만 우리집에서 할 계획이었지만
흥분한 남편이 식사제공까지 약속한 것이었다. 자기 딴에 자기 손으로 간단히 소면을 대접하면 되겠다 싶었나 본데,
내가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 있다면 모를까, 그게 가당키나 할 일인가.
나는 남편의 앞뒤 분간 잘 안되는 사려 깊지 못한 결정에 화가 났지만, 나라는 사람의 장점은 일단 마음고쳐 먹으면
제대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손님들은 내가 삼십년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알고 지내왔고, 분명 죽음까지도 서로 지켜볼, 말하자면 인생친구들이다.
그러니 십수년 만의 이런 노고 쯤.
결국 간단한 소면이었던 것이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커져서 상이 차고 넘치는 만찬이 되고 만 것이었다.
고등어 졸임, 불고기, 골뱅이 무침, 오이냉국, 찌개. 오후내내 혼비백산 만들어낸 요리들이다.
여기에 냉장고 가장 깊숙이 숨어있던 젓갈을 위시해 갖가지 밑반찬을 털어내니 어찌되었든 무어라도 입에 맞을
가짓수가 만들어 진 것이다.
하다보니 오랜만에 차려보는 손님상이 솔직히 뿌듯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십이첩 반상을 차려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흥분하고 신이 났던지 저녁상을 너무 차린 탓에 배가 부르다고 해서 구상하고 있던 안주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안타깝기조차 했다.
막걸리파를 위한 두부김치와 묵무침, 맥주파를 위한 스테이크와 야채샐러드를 대비하고 있었는데.
집이 다소 외진데다 모처럼 소란에 뭐라할 이웃도 아니어서 목청껏 기타치고 노래하고 와르르 웃어가며 이야기꽃도 피웠다.
손님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고 번개팅에 흔쾌히 장소와 음식을 제공한 우리에게 무한 고마워했으니 치사받는 우리 또한 뿌듯했다.
배웅길에 식사는 몰라도 안주쯤은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와주십사 진심으로 말했다.
우리집은 놀기에 최적의 조건 아닌가하며. 그래봐야 바삐 사는 생활에 일년에 몇 번이나 되려고.
요즘 부쩍 친구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이 들면서 가장 큰 공포 중의 하나가 외로움인 듯 싶다.
그러니 나름 내 살 궁리하는 것이 친구를 단도리 하는 일이다.
약다고 비난할 것은 아닌 것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면 되는 것 아닌가.
목적이 될 만한 좋은 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인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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