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 무색하게 나는 낮잠을 잘 것이었다.
새해 새벽 다섯시 반이었고,
나는 미처 새해 소망을 정하지 못해서 어제와는 다른 소망을 생각하며 앉아 있었고
끝끝내 숙제를 마치지 못한다면 별 수 없이 어제처럼 시무룩해서는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자야 할 것이었다.
자는 내 모습이 가엾다거나 한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꿈에라도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를 일이었므로.
새해 첫날이라고 일분 일초가 더 긴 것도 아니고
맑은 대기를 일렁이며 새벽종이 울릴 것도 아니고
햇살이 찬란한 무지갯빛인 것도 아닌데
하루 아침에 새 소망이 성스런 샘물처럼 솟을 것인가.
기어이 지금, 나에게 소망을 내어놓으라 한다면
작년의 소망, 재작년의 소망, 재재작년의, 그렇게 수십년의 낡은 소망,
또 내년 후년의 소망까지 끌어다 천연덕스럽게 새해 소망이라고 읊는 도리 밖에 없을 것이었다.
생각 끝에 제발 별 일 없이 한해가 슬금슬금 지나가기를 소망해 보았더니
그 안스러운 소망이 내 사는 동안 가장 고뇌한, 가장 진정성있는 소망 같아서 슬퍼졌다.
새해 소망이 이래서는 안되는것 아닌가.
그런데 새해 아침이라고 낮잠 들기 전 엄마한테 문안인사를 드렸더니,
양력 정월 초하루가 무슨 새해냐, 실감도 없다 하신다.
아, 그렇다. 새해 소망을 유예해도 좋은 한달 한주가 생겼다.
한달 한주의 말미, 고심끝에 어쩌면 반세기 만에 새끈한 소망 한 줄 읊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비로소 느긋이 낮잠에 들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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