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선물(12.04.16) 아이들 자율학습 지도하고 몸은 물젖은 솜처럼 피곤한 참인데, 눈이 번해 하늘을 보니, 꿈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는 노을. 오로지 집만을 내 쉴곳이라고 돌진하다가 정신이 퍼뜩 들어 주저없이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여름도 아닌데, 어째 이리도 노을이 고운지. 풀죽은 나같은 사람에.. 단상 2012.04.17
눈을 뜨다(12.04.16) 아침에 눈을 떠서, 내가 무엇을 맨 먼저 보는지 자각해 본 적이 있는지. 하루하루를 늘 반복적인 관성으로 시작하고 또 그렇게 끝내 왔다. 눈 떠 본 세상이 어쩌다 한 번은 개벽처럼 번쩍하는 황홀한 경험이나 눈을 감아 세상을 닫는 의식이 절벽처럼 막막하여 죽음의 공포로 소리죽여 울.. 단상 2012.04.16
정말 봄비처럼 봄비가 오기를(12.04.02) 비가 내린다. 봄비가 이래서는 안될진대 제 본분을 잊고 후두둑 거리며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고 있다. 우왕좌왕 빗속을 허둥대다보니 화가 난다,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물정없는 봄날씨라 해도 이렇게 제멋대로 일 수는 없다. 봄비는 나지막한 걸음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귓전을 간지.. 단상 2012.04.03
개교기념일에...(12.03.26) 쉬는 날 학교 나와 보기는 처음이다. 학교 일은 학교 안에서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지라 오늘 같은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한데, 노는 것도 남 놀때 놀아야 흥이 나는가 보다. 남 일하는 중에 놀면 꽤나 꼬실 줄 알았는데, ㅎㅎ 그것은 늦잠자는 잠시 잠깐이다. 여튼, 학교 .. 단상 2012.03.27
먼 봄(12.03.23) 수요일만 간절히 기다렸었다. 수요일부터 날이 풀린대서. 과연 수요일 오후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됐다. 이제 살 것 같다. 그런데 하루 만인 어제 오후부터 간간이 빗방울이 비치더니 밤엔 낙숫물 소리가 제법 요란 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자주자주 빗소리에 귀를 빼앗겼다. 이 비 그치.. 단상 2012.03.23
고독한 소년(12.03.22) 올핸 담임을 맡지 않아 출근길이 꽤 여유롭다. 부지런한 선생님들께는 미안하지만, 간사한 마음이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통에 요즘은 제일 늦게 학교에 진입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낼부터는 조금만 더 서둘러야지. 출근하다보면 텅빈 운동장을 소년 혼자 뛰고 있다. 머지 않은 육상대.. 단상 2012.03.22
시들음의 향기화가 쉬운가마는(12.03.12) 졸업식이 2월 9일이었으니 무려 한달이 지난 꽃들이다. 종류에 따라 좀 더 명을 부지하는 카네이션이나 안개꽃 같은 것도 있지만 그래봤댔자 더이상 눈길 갈만한 아름다움은 잃은지 오래다. 가장 아름다울 때 쯤 행사를 화사하게 빛냈지만, 이제는 교무실 한 켠에 잊혀진 채 폐기를 기다.. 단상 2012.03.13
압도적 향기(12.03.12) 고운 것을 아름답다 한다면 이 꽃은 아름다운 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향기로워 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이 꽃만큼 아름다운 꽃은 흔치 않으리라. 두어 포기 란이 교무실 한칸을 진한 향기로 채우고 있다. 화초를 잘 모르는 나는 향기의 출처를 몰라 누군가 향수를 뿌렸으려 했는데, 장.. 단상 2012.03.13
Who Are You? 서른 즈음에 이미 먼 곳을 헤매고 온 듯한 김광석이나 기형도 같이 정신이 조로했던 이들(나는 그렇게 여긴다)을 보면 나는 풀이 죽는다. 사람이 다 물리적 나이만큼 정신도 나이가 드는건 아니지만, 나 자신, 그 괴리가 너무 심하게 느껴져 때론 나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나.. 단상 2012.03.09
참자(12.03.08) 바람을 앞세워 봄이 오는 것 같긴 한데, 그래서 학교 주변 새순 소식이 궁금하긴 한데, 당최 바빠서 녀석들과 인사 나눌 틈이 없다. 사는 게 뭐라고 코앞의 일에 전전긍긍, 며칠 동안 잠시잠깐 고개 들어 학교 앞 원당 들판 한 번을 본 적이 없다.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얼른 집에 기어들.. 단상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