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든 꽃처럼 버려지고 싶다(16.7.8) 어떤 이에겐 사람 하나를 지우는 일이 낡은 냉장고 하나 끌어내는 것보다 성가시지 않은 일이지 싶다 앓던 이 하나 뽑는 일과는 비할 바 없이 가볍고 산뜻한 결단이 되는 듯도 싶다 기억할 것 하나 없는 부산한 오늘이 어제로 그제로 속수무책 떠밀려 가듯 누군가도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7.08
고작 밭 한 뙈기에 목맨 사내(16.7.1) 그는 오늘 아침도 밭에 나왔다 어제 아침에도 저녁에도 나왔었다 밭고랑 허물세라 경건히 걸으며 고요한 아침 사위에 홀로 삐그덕삐그덕 약을 친다 두둥실 능선을 타는 붉은 이랑에는 가는 팟닢이 푸른 빗살처럼 곱고 이뻐서 지나는 이마다 한 마디씩 거들고 마니 그는 정원사 부려 다듬..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7.01
흥겨운 인생관(16.6.23) 꽃이 피니 으레히 그러했듯 나는 다시 살아야 겠다고 결심한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이제껏 증명되지 못한 등식을 다시 세우며 사랑을 하여 삶을 증거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가급적이면 흐드러진 꽃처럼 헤픈 사랑을 사분사분 날리는 꽃잎처럼 가벼운 사랑을 말이다 사랑을..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6.23
몰랐었다(16.6.14) 대개는 그런대로 볕 좋은 날이었다 별 탈 없고 담담한 날들이었다 시간은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성실하게 흘렀고 가끔 진눈깨비 질척이는 날을 두고두고 안줏거리로 삼을 만큼 참 고르고 평안한 날들이었다 몰랐었다 그 시간들이 어느 순간 저승꽃처럼 야금야금 내 삶을 잠식하고 속..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6.14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았다(16.6.14) 어린 아이를 생각하며 나무 한 그루 심어 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이의 어여쁜 손가락 굵기면 족했을까 볓 좋은 날엔 여린 눈을 떠 생애 처음 부시게 봄햇살을 맞고 봄비 내리는 날엔 배부른 줄 모르고 봄비를 쭉쭉 들이키다 보면 온몸엔 푸른 물고기처럼 날래게 피가 돌았겠지 낭..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6.14
꽃 보는 청승(16.6.3) 허겁지겁 닿았더니 매화도 졌더라니 동백도 또 그렇게 시름없이 보내었네 뭐 그리 별스런 일을 한다고 꽃이 피고 지는 일도 잊고 살았네 꽃 피는 시절엔 꽃그늘 한자락 깔고 앉아서는 흐린 생에 살짝 고운 꽃물도 들여보고 후루루 피고 지는 꽃잎에 찰라 생의 잠깐 한 시절 덧없이 실어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6.03
저문 강가 1(16.5.19) 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저무는 강가를 무심히 서성일 수는 없다 늘 마지막처럼 지는 햇살에 흔한 풀꽃이 잠깐 빛을 발하거나 기척도 없이 반쯤 기진해 있던 것들이 수런수런 말문이 터지기 시작할 때 더욱 깊고 어둡고 무겁고 느려져 마침내 그 마음으로 흘러드는 강물이 담담할 리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5.19
동백꽃이 져서는(16.5.17) 동백꽃 보러 동백정에 갔더니 나 없는 사이 꽃은 툭툭 져서는 뚱한 얼굴로 나 보라고 상한 시신을 발가벗는 것이었네 즐비하게 누워서는 제 슬픔이 내 탓이라네 내가 저에게 무심했던 탓 하여 제 시절 며칠 비껴 온 탓 나참, 무참해라 꽃조차 제 슬픔의 근원으로 나를 지목하고 나는 꽃 못..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5.17
희망(16.2.3) 가끔 죽음이 스며들어와 살그머니 내 곁에 눕는 때가 있다 연인처럼 베개를 나란히 하고는 마른 등걸같은 내 삶을 상냥하게 쓸어가며 속깊게 나를 들여다 보는 때가 있다 지척의 살가운 동무가 되어 토닥토닥 지친 걸음 등짝을 치며 재촉하지 않아 고맙다 내 삶이 저 검은 심연 속 돌이킬..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2.03
결론(15.12.30) 누가 너에 대해 묻는데 할 말이 없다 너와 눈 맞추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이제와 새삼 너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서글프기는 하다 그림자인 줄도 모른 채 그림자와 보낸 시간이었다 네가 공허하게 지껄여댄 말들처럼 너도 한가지였다 사실, 그림자였으니 꼭 너여야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