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I(16.12.2)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동안 포근했던 날들은 내 삶을 사는 자세처럼 늘 하루 말미일거라 생각했으므로 추위가 급작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망했다 마음이 숭숭 바람에 부대끼는 성긴 나뭇잎 같았다 대비의 견고함이란 게 사실 대개 그 모양이다 추위만 해도 그렇다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2.02
소외(13.11.25) 남자는 에이포 용지만한 플라스틱 쟁반에 미지근한 믹스커피 한잔을 얹어 내왔다 얼른 먹고 떨어지란 듯 채 끓지도 않은 물에 미숫가루처럼 엉긴 커피가루를 휘휘 저어가며 가져왔다 분홍꽃무늬 점점 아이보리 쟁반에는 참 진득히도 앉은 생활의 때 입안에 미끈거리는 믹스커피 응어리..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1.25
자소서를 쓰는 아이를 보며(16.11.25) 제 밥벌이나 했으면 좋겠어 차마 꿈이라 부르기 서글픈 꿈 천박한 줄도 모를 만큼 우리의 염치는 어느 바닥을 기고 있는지 새잎처럼 볼이 야들했던 아이들이 긴 가뭄 마른 땅에 꽂힌 푸성귀 같아 제 입으로 들어갈 몇 술 끼니 걱정이 주거부정 부랑자와 다를바 없어 천덕꾸러기 눈치만 살..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1.25
계몽(16.11.11) 모성도 신화라 했다 가족도 신화라 했다 어쩌나 민족도 국가도 신화라 한다 종교는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눈 매서운 이의 똑 부러지는 말이었다 작은 가슴이 분으로 파들거릴 때 아득한 길에 선듯 막막해질 때 울지도 못할 만큼 서러울 때 꽃모가지 무수히 똑똑 끊어 제 마음 만큼 꽃무덤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1.11
내 가을의 백일몽(16.10.29) 내게 가을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첫악장 잎이 져 하얗게 형해만 남은 북국의 자작나무의 숲 그 숲에 늑대무리는 밤새 하울링을 하고 나 또한 눈 푸른 늑대가 되어 긴 밤 먼 별을 그려 목 놓아 울고 눈 발 간간 날리는 늦은 가을에는 생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걷는 것이 내 진정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0.29
혼자 앓으며(16.10.11) 밤새 몸을 앓는다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통증 내 몸의 모든 신경망들이 작정하고 아파보자고 파발을 띄운 모양이다 아득한 말단, 오지까지 주적이 없어 처방불가한 고통 나의 소망은 한가지 뿐이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구나 아프니 당신도 일 없다 당신을 벌하는 심정으로 나는 절대 혼자 ..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0.11
바람 선뜻한 날(16.10.6) 뜻밖으로 선뜻한 바람이 일었고 어쩌면 삶에 섣불리 깊어질 일이 아니었다 섣불리 사랑에 빠지지 말 일이었다 재앙이다 봐라,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0.07
편두통에 진 날(16.9.12) 할딱이는 관자노리를 가만가만 짚어가며 부디 순하게 살자고 마음을 다독였어 매사 단 한 번 뿐인 양 핏대 올려 살아서는 안되는 거라며 나를 거는 독한 짓은 말자고 얼렀어 살면서 꺾이는 무릎을 곧추 세우는 일에 매양 속수무책이지만 삶과 맞장 떠보자는 오기는 돌이켜보면 늘 퍽이나.. 다시 새겨볼 마음 2016.10.05
가을노래(16.9.11) 명랑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가을에 나는 헤프게 입꼬리를 실룩여 볼 참이야 내 마음은 목줄 풀린 개처럼 천진하게 가을을 겅중댈 거야 간혹 드리워질 서늘한 우울의 베일 쯤 살랑살랑 경쾌한 가을 바람을 타면 좋겠지 우울에 이골이 난 사람이 되어 툭하면 어두운 지층 속 우멍하게 들어..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9.11
혼자 아프고 나서(16.8.8) 근래 나는 자주 아프다 몸의 곳곳 위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손목이나 발목, 무릎도 아프고 자꾸 아프니까 손가락 통증 쯤 사소하다고 분류한다 어느 때는 그 어디인지도 알수 없게 아니면 그 모든 어디서나 아프고 아니면 처방전도 낼수 없는 마음의 병이 불길한 기운으로 스물스물 나.. 다시 새겨볼 마음 201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