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15.7.21)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그저 해 지는 쪽을 향해 걷는 일 보폭이 작거나 걸음이 느리면 시간에 등 떠밀리며 탄식의 기력조차 소진해 버릴 때까지 걷고 또 걸어 하루 목숨의 일몰로 기우는 것 사람의 삶과 사람의 마음을 끝내 모른 채 쏴아쏴아 낭자한 풀벌레 울음에 밀려 몽매의 아득한 일..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21
애인 2(15.7.15) 하찮을 망정 만만한 적 없는 삶이 어느 때는 마른 기침 나는 도시를 콜록이고 어느 날은 폐선의 묘지처럼 쓸쓸한 포구에서 퍼질러 두 다리 뻗고 지는 해를 울기도 한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 되면 장하게 하루를 견뎌낸 삶이 맥없이 무릎을 꺾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15
애인 1(15.7.15) 아무리 와글거리며 하루를 살았든 하루살이를 접어야 하는 시간은 오고 나는 저승길이라도 떠나는 양 제법 경건하게 잠자리에 들 차비를 한다 하루 생과의 작별사는 한 편의 시 시인은 이승의 내 마지막 애인이 되어 제 힘 닿는 한 가장 다정한 조사(弔辭)로 내 마음을 어루고 토닥여 주..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15
그 후 이야기, 담담하게(15.7.10) 너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계절이 너 없이 바뀌었고 멀미처럼 비슷한 일상이 지나갔다 너 없이 나리꽃이 피었다 금세 졌고 너 없이 목백일홍도 여름내 진진하게 피고 졌으며 가는 비 굵은 비가 온다거나 한동안 가물었거나 했고 내 일상을 소소히 스친 특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수했다..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10
길(15.7.6) 폭양 외진 국도 개의 시신 하나 이전에 개였으나 이제는 뭉개진 붉은 고깃점 쓸쓸하고 슬프고 끔찍한 한 때는 누렁이였던 물체 어찌하여 인가도 없는 이 길에 나섰는지 모를 개 혹, 지금 나처럼 나섰던 것인가 결국 먼 길을 죽으러 온 개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종종 걸어 왔기를 가끔 쓸쓸..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06
오랜 만에 비가 오고(15.7.3) 먼길 떠났다 돌아온 당신처럼 반가운 비가 오네 당신은 오랫 동안 듣지 못한 먼 곳의 소식을 한 아름 안고 오고 밤새 나는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이 너무도 그리웠노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꾸 벙글어지네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7.03
통속적으로 2(15.6.30) 내가 너를 놓아버렸을 때 너는 날더러 끔찍히도 모질다 하였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더욱 모질 각오였음을 아는지 사랑으로는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공언했 듯 사랑을 함에 있어 나는 너보다 아픈 편에 서기를 자처한 오만이었다 어떤 아름다운 단어로도 어떤 현란한 무늬의 허울로..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6.30
추억이 폐허여서는 안되겠지(15.6.27) 오랫동안 잊었던 길을 따라 갔다. 추억의 가느다란 줄을 잡고 거슬러 오르듯. 떠나기만 하는 강물 곁에는 오래도록 변치 않은, 이십 년 전의 길이 있다. 그 때엔 나도 젊었으니 가끔 삶에 탄성을 지르는 때가 있긴 했을까. 아닐 것이다. 어느 때고 대개는 그 때가 인생의 가장 고단하거나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6.29
회피(15.6.29) 나는 근심 없는 짐승처럼 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툭툭 걷어 차여도 자고 밤이 깊은지 얕은지 생각 않고 자고 남들이 외로이 밤을 밝히는지 나처럼 안녕한지 아랑곳 없이 자고 배고프도록 자고 누군가 내 자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한다면 더더욱 모른 척 자고 나는 그래야 살 것 같고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6.29
좋은 시를 읽는 밤(15.6.26) 흥겹게 비가 내리는 밤이 아까워 나는 애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무릎을 맞대고 밤새 얘기를 나눈다 나의 애인들은 맥고모자 백구두의 멋쟁이들은 아니지만 비 오는 날의 흥을 아는 멋진 사내들이다 빗소리랑 즐거운 대화는 참 맛나다 비가 오는 밤에 나는 시를 읽는다 넘치게 많은 시를 .. 다시 새겨볼 마음 201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