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뜰에 피고 지는 꽃에 시선 둘 여유가 없고 나뭇잎이 무성한들 그늘에 들어 쉴 일도 없다
아무려나 내 무심한 만큼 나하고 무관하게 저희들끼리 희희낙락 한 생 살아보라 했더니
해도 너무 한 것이 염치도 거침도 없이 어린 나무들이 담을 타 넘어 감히 이웃의 영토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내가 절대로 대적 못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내가, 내 삶이 심히 불안하고 두려워져서
이웃에 보일 구차하고 비굴한 성의를 궁구한 끝에 나무에게 가차없는 처단을 시작한 것이었으니
피에 취한 망나니가 따로 없게스리 새닢 만한 반동의 기미에도 가차없이 잘라 효수할 기세였던 것이었다
사정없이 베어져 누운 나뭇가지를 딛고 섰는데 너무 헤프게 자라 목숨마저 헤퍼져 버린 단풍나무를 딛고 섰는데,
아, 순간 면도칼 같은 찰라가 마음을 긋는 것이었다
자줏빛 성긴 몇 떨기 꽃 눈부시게 눈부시게
이웃 울 너머로 두어 가지 소심히 넘기고 있는 여윈 자목련 한 그루 성한 초록 잎 틈에 몇 떨기 자주꽃
내가 그 꽃들을 보는데 그 꽃들이 나를 보는데 초록에 자줏빛이 하도 선연해서 나는 속절없이 울고 싶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어서 설령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야 한다 해도 끝내 하나 구해야 할 목숨같은 꽃이어서
여리디 여린 아이 같은 꽃이어서 저리 스러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꽃이 고와 며칠 목숨의 말미를 얻은 목련은
여전히 방자하게 두어가지 이웃으로 떨구고 있고 꽃이 진 지금도 의아스럽게 목숨을 유예받고 있다
나의 잔혹한 결기가 이제 제풀에 풀어져 버리고 살의를 잃은 나도 덩달아 삶에 반쯤 손 놓고 있고 반 쯤의 평화를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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