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을 누르고 거스르며 아이 기르고 살림 하며 살다가 마침내 자유인을 선언한 선배가 있는데 오늘 나를 보러 와 주었다..
나와 그녀가 극단적으로 다른 점은 나는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인간인 반면, 그녀에게는 가장 엄격하고 단호한 명령자가 자신인 듯 하여 하루의 태반을 냐태하고 무기력하게 날려버리는 나는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그녀를 생각하며 조금 자책을 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먼 곳, 가까운 곳 가릴 것 없이 올 상반기를 바삐 쏘다니던 그녀가 마침내 내 쪽으로도 발걸음을 해주고 나를 인도해 주어 지척에 두고도 미루어두던 무량사랑 보령쪽 나들이를 하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었다.
무량사에서 머지 않은 곳에 예술촌이 있는데 테마가 맥락이 없고 관리도 부실한 편이라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선배가 그곳에 꽤 특이한 카페가 있다고 해
가 보았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곳인데 꽃사태진 인테리어가 정말 독특하긴 했다. 그리고 때묻은 조그만 모산 미술관에선 지역출신 조각가의 전시회가 있었는데 꽤 괜찮았다. 편하고 대중적이었다. 조소 전공이라는데 회화까지 넘나드는 모양이다. 재료와 기법에서 노력이 엿보였다. 질감이 살아있는 한지 위에 그려진 드로잉도, 오석 작품도, 코발트 색깔도 다 이뻤다.
궁금한 것도 참 없고 삶에 대한 기대도 에너지도 없는 편인 나는 진정 그런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벗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내 본능을 거스르는 삶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 그녀와 한달간의 여행을 계획한 것도 그 일환이다.
몽골로 들어가 모스크바로 나오는 일정인데 이제까지의 여행경험을 통털어 가장 길고 가장 불편한 여행이 될 것이며, 내 삶의 태도로는 대담하다 할 만한 도전이다.
안일하고 비관적인 내게 그녀는 맞춤의 여행 파트너가 될 것 같다.
나는 그녀 때문에 기상이 이를 것이고 더 걸을 것이고 한번이라도 더 낯선 곳을 기웃거릴 것이다.
여행날짜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저질러 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여행이 캔슬되기를 내심 빌기도 하였지만 결국 확정이 되었고 이제 마음을 다지는 일만이 남았다.
청량한 초여름 무량사
계화예술촌에서 선배 격려 덕에 많은 사진을 찍었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들. 레지던스를 제공하며 작품활동을 지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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