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공사 마치고 얼마 안되는 화초마저 거지반 사라져버린 삭막한 화단을 벗이 본 것은 참 운 좋은 일이다.
겨울이 바로 문지방 밖인 어느 날, 부탁한 꽃사과와 함께 넉넉한 한 줌 꽃양귀비 씨앗도 가져와 무참한 내 화단이 한심한 듯 안타까운 듯 내 뜻과 별무 상관 없이 휘휘 화단 가득 씨앗을 뿌렸던 것이 이제 분분 붉은 꽃을 피워 무심한 당신보다 더한 기쁨을 내 삶에 보태고 있다.
별다른 노고를 구하지도 않고 저 혼자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무심히 쑥쑥 자라 고운 꽃을 피워올리는 것이 나는 눈물나게 고맙고 대견하다.
화단의 빈곤을 가리고자 급히 이식해 왔던 데이지도 기대에 넘치게 흐드러져 나를 감동케 하더니 이제 붉은 양귀비꽃마저 보태어져 나는 우편배달부에게도 택배기사에게도 대문 안쪽 고운 화단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조금은 으스댈 수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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