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로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없다보니 몇 자 끄적이는 것도, 사진 정리하는 것도 일이 되었다.
오죽하면 작년에 다녀온 코카서스 사진 정리도 이제껏 미루고 있을까.
나다니는 일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의 끈을 한없이 느슨하게 풀어 바삐 살던 날의 간절하던 꿈이
여전히 꿈인채인 채로 한 해를 넘겼다.
나란 사람은 역시나 절박함이 등을 떠밀어 마음이 종종걸음 치게 되어야 비로소 무언가 일이 되는 모양이다.
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주사는 한참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다사로운 봄날에.
아마 아주 오래 전 아마도 이십년은 족히 되었을 어느 환한 봄날에 보았던, 동산에 누워 있던 와불의 기억이, 그 따사롭던 느낌이 각인되었던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운주사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와불이 떠올랐다.
물론 동남아의 와불들과는 비교불가. 너무도 정감있고 따뜻한 모습이다.
다시 온 운주사는 많이 달랐다.
그동안 정비도 많이 되었을 것이고 내 기억의 오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참 좋았다.
천불천탑은 아니더라도 어디를 보아도 시야를 벗어나지 않게 즐비한 탑과 불상들을 보며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고 유쾌해졌는지.
내 고장에서 절제와 균형과 정교함의 완결판이라 할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고 산 내게 이 곳의 소박한 탑들은 얼마나 다른 평안을 주던지.
또 불상들은 어떠한가.
미륵의 세상을 꿈꾸었을 이들이 새긴 불상들은 간절함을 담기에는 너무도 순박해서 천진한 아이의 얼굴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암튼 입구부터 늘어선 탑과 불상들을 살피며 가노라니 어쩌면 나도 그 시절을 살았다면 서툰 석수들 틈에 앉아 조그마한 불상 하나 새기고 싶었을 것 같다.
운주사에서 화순군 관광안내판을 보고 쌍봉사를 가보았다.
사찰은 규모가 작고 소박했지만 대웅전 건물이 독특했고, 뜻밖에도 기가 막히게 정교하고 보존이 잘된 철감선사 부도와 탑비가 있어 애써 들른 보람이 있었다.
헛바람 난 일은 화순 적벽을 간 일이었다. 미리 예약하여 버스투어에 참가해야만 볼 수 있는지를 몰라 헛걸음을 했다. 한참을 꾸불꾸불한 길을 들어가야 했는데 말이다. 화순 적벽은 삼십 여년전, 폐쇄되기 전에 내가 혼자 어찌어찌 찾아와 본 곳이었고, 그래서 추억을 일깨울 겸 다시 와본 것이었는데, 이제 댐도 들어섰고,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어 물어물어 시골버스 타고 들어갔던 아스라한 그 기억속의 적벽하고는 한참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쌍봉사
이 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초파일 준비로 보살 두어분이 바삐 오간다. 살그머니 문닫힌 지장전을 열어보았다.
채색된 목조 보살상이 보여 그 분이 보물 중 한분이려니 했다.
탑비. 비석은 사라지고 없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들어올려 조각한 그 마음 참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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