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명의로 facebook 접속을시도했으니 확인하라고 메일이 와 facebook에 접속했다.
나는 facebook을 하지 않고 그나마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무작위로 오는 소식도 성가셔서 facebook을 끊고 산지가 근 일년이 다되어 가는 것같다.
혹시나 해킹이 불안해 권고하는대로 비밀번호를 새로 설정하고 모처럼 지인들의 소식을 대강 스캔했다.
어쩜.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스리 모두가 어제처럼 변함 없다.
열혈 선배는 여전이 정치현실에 핏대 올리고 있고 감수성 넘치는 선배는 일상의 사소함에 변함 없이 과잉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사교성 좋은 지인은 정월 초하루 같은 함박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내가 세상의 한끝으로 잠적한 동안에도 나의 안위를 위협할 일은 일어나지 않은채 치명상 없는 부산함으로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사나흘 전 영화"살인자의 기억법"을 보았다.
보고 나서 "소설과 많이 다르네." 그랬더니 동행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글쎄. 소설에서는 김병수가 딸을 죽이지.
그러다가 김경주의 싯구절을 찾기 위해 소설을 다시 뒤지게 되었는데 그 두어줄을 당최 어디쯤에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서 소설을 샅샅이
뒤지게 되었다.(이 소설은 짧다.) 그러다 보니 김병수가 죽인 은희는 딸이 아니라 요양보호사였는데, 내 기억에서 이 부분이 깨끗이 삭제되어 있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인공 못지 않은 내 기억이라니. 요즘 종종 내 흐려가는 기억력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
이를 테면 독서모임에서 정한 책을 다 읽었음에도 막상 모임에 가면 디테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찰흙으로 밎다만 얼굴처럼 두루뭉실한 이미지만
남을 때가 있다. 새로 습득한 어휘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남보다 훨씬 더 에너지를 쏟고도 결실은 없는 허탈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벗들은 자기들도 그렇다고 위로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자신들은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지만 나는 밑줄 그어가며 읽고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득이 없을 바에야 차라리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화요일에 퇴직한 옛 동료들을 만났다.
점심 먹고 서너 시간 수다 떠는게 만나면 하는 일의 전부다.
근황부터 최근 이슈까지 닥치는 대로 쉴새 없이 이야기를 한다.
화제가 김명수 대법관 지명자에까지 미쳤다.
야당국회의원의 적어도 절반은 기독교도이고 기독교도 및 교회의 지지에 힘입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야기, 요즘 교회마다 붙어 있는 참 원시적인
문구의 플래카드, 교회의 정치권력화 등등등.
셋 다 공분했다.
셋 중 하나는 오랫동안 기독교를 믿어온 사람이고 나와 다른 하나는 무신론자다.
기독교도 지인은 요즘 교회의 행태에 대해 몹시 실망스럽다고 했다.
목사를 예수와 동급으로 우러르는 신도들을 생각하면 목사의 책임감을 더욱 무거워져야 하는데 목사들이 오히려 몽매한 신도들을 조작한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도 당시 야당이었던 후보의 정책에 반대하는 서명을 교회에서 받아 목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어 감정이 껄끄럽다고 했다.
나도 교회 앞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한심하기도 한 참이다. 목사들이라면 그래도 남 못지 않은 교육을 받은 이들일 텐데 알고도 저런다면
참 사악한 일이고 모르고 저런다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보지도 않으며 틀어놓은 티비에서 기가 막힌 노래가 나와 쫓아가 보니 하현우와 김재희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함께 부르고 있다.
앙상블이 기가 막히다. 고음이 주무기라 여겼던 하현우의 저음파트가 참 아름다웠다. 다시 들어보려고 유튜브에 들어가봤더니 cj에서 막아놓았다.
맥없이 다른 옛노래들을 들었다. 오랜 만에 피아노곡들도 들었다. 음악, 지난 음악에 자꾸 마음이 홀리는 날이었다.
오늘은 독서 모임에 쓸 레베카 솔닛의 책 한 권과 아울러 김경주와 서효인의 시집, 그리고 서효인의 산문집을 주문했다.
김경주의 재기는 부럽기도 좀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김영하 덕을 좀 볼 것 같다.
서효인의 산문집은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에 수록된 한 편에 매료되어 꼭 사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퇴직하고 사람 구실 하는 것 하나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쯤 엄마를 위해 반찬을 준비하는 일이다.
오늘도 냉장고도 털 겸 냉동실에서 오래 묵은 꽃게와 갈치를 마침내 얼음해제시켜 꽃게탕과 갈치조림을 했다.
꽃게탕을 맛있게 되었고 갈치조림은 좀 달고 느끼하게 되었다. 아무려나 엄마는 다 맛있다고 할 터이니.
엄마는 나 고생시킨다고 미안해하지만 서서히 나의 저렴한 봉양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그리고 이쯤으로도 나는 대단한 효녀가 되어 버린다.
엄마가 내일 친구들 불러 꽃게탕으로 점심 먹어야겠다고 함은 바로 나를 자랑하고자 하는 얄팍한 수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둔중한 무언가가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지만, 평소처럼 엄마랑 옥신각신하며 최대한 마음 가벼이 가져보려고 노력한다.
여든 두 살이나 된 엄마는 벌써 추석 대비해서 포기김치, 깍두기, 물김치를 담가 놓았다.
확실히 마음의 감도가 예민해졌다.
좋은 징조다. 조금만 더 힘을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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