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영화가 더욱 가까워졌네(17.8.10)

heath1202 2017. 8. 10. 03:13

요즘 소소하게 재미를 붙인 것이 우리 지역의 영화관을 가는 일이다.

그동안 영화를 보려면 대개는 할인카드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공주메가박스를 갔고

가끔 상영관 찾기가 어려운, 관심 가는 소위 '아트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대전 cgv의 아트하우스를 이용하곤 했다.

그러다가 집 공사하고 구름이도 아파 타지로 영화보러 가기에 심신이 지쳐 "내 사랑" 이후 영화관에 발길을 끊고 있던 차에

금성 시네마가 새단장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빈둥거리다 슬슬 저녁 산책 가듯 부담없어 시내 나간 김에 한 번 보았다.

극장은 원래대로 두 개 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 작은 관에서 "옥자"를 상영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옥자"는 멀티플렉스 상영을 안하였으므로 극장에서 볼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큰 돈 들여 리모델링을 했다더니 과연 새 의자도 크고 푹신하고 리클라이닝 되는 것이어서 아주 편안했다.

지난 주에는 "택시 운전사"를 보았다.

이번 주는 "청년경찰"이 새로 걸렸다. 훈훈한 박서준과 선량한 강하늘의 케미가 좋다니 또 가서 부담없이 볼 참이다.


사실 너무 낡아 그동안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금성시네마는 나에게는 좀 각별한 향수가 있는 곳이다.

내 기억이 미치는 금성극장의 역사는 적어도 오십년에 가깝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웃에 일본에서 살다 왔다는, 말씨가 조금 색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른 걸음으로도 삼십분은

족히 걸리는 밤길이 무섭고 적적했던 걸까 극장에 어린 손녀와 나를 동반해서(당시에는 두 극장이 나란히 있었는데 후에 부여극장은 없어졌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어른 영화들을 보여주곤 했다. 영화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지만 겨울밤 인적 드문 들판의 신작로길을 자박자박 걷던 기억이 아슴하다.

조금 더 커서는 오빠들과 "용쟁호투"나 "맹룡과강"을 보러 갔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외국영화 보러 드나들다 학생부 선생에 붙들려 교무실에

엎드려 반성문을 쓰곤 했었다.

그후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있었던 동안에도 금성극장은 건재했고, 멀티플렉스는 못되어도 두개의 상영관으로 금성시네마가 되었다.

금성시네마 시절동안 손가락 꼽을 정도로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시네마가 되었어도 운영은 시골극장이었고 손님은 늘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철학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리 보아도 이윤창출은 꿈에도 없을 것 같은 금성시네마는

그야말로 유구하게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다.

너무 낡아져 쥐라도 나올까 극장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문을 닫지 않는 극장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심사였던지.

이만큼 작은 소읍에 이만한 규모의 극장이 건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 하다 할만했다.

얼추 나만큼이나 나이 먹은 금성극장이 새단장을 하고 보니 나도 아울러 조금 가뿐해진 기분이다.

가능하면 많이 이용해야 겠다는 다짐도 한다.

건물 소유자가 바뀌었다던데, 건물 안에 야심차게 만화카페와 코인노래방도 함께 문을 열어선지 사람들이 제법 끓는다.

미용실에 갔더니 아는 것 많고 상식 있는 내 전담 헤어드레서가 "아이들이 갈 곳이 생겨 얼마나 좋아요. 사실 애들이 갈 데가 없어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게 참 불쌍했거든요."라 한다.

부여 변두리에서 은둔하듯 사는 나보다 훨씬 생생하게 실상을 느꼈던가 보다. 부여토박이로서 조금 창피했다.  그니는 논산사람이다. 


하나의 종합문화공간이 생겼다고 반가워하는 이를 여럿 보았다. 부디 경영주가 소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공간을 잘 가꾸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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