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날로 고추장 담그기(17.8.3)

heath1202 2017. 8. 3. 22:57

 

오늘의 내 업적은 고추장 담근 일이다.

이야,큰일 했네 하고 생각 하는 이가 있다면 참으로

무안한 일이다.

고추장 담그기 세트 두 개를 주문해서

보내온 재료를 섞은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슬로우 푸드의 상징이랄 장이 이렇게 뚝딱 만들어지다니

음식의 빛이 덜해지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아닌 것이

누군가 내 대신 메주를 쑤어 띠우고 조청을 만들고

찹쌀풀도 쑤어 발효시켰으니 필요한 준비과정은 빠짐없이

다 거쳤고 거기에 재료의 표준화, 정량화로 맛을 보장했으며

과학의 힘을 빌어 일주일이면 발효가 되어 먹을 수 있도록

하였으니 만드는 이의 솜씨가 빠져 좀 싱겁긴 하지만

해찬들 고추장 사먹는 것 보다야 훨씬 흐뭇하지 않겠는가.

발효가 안 되었음에도 새끼 손가락으로 찍어먹어보니 맛이 괜찮다.

집에 걸쭉해진 매실청이 있어 한통은 그것을 섞었더니 좀 더

달고 향긋한 듯하다. 일주일 후가 기대된다.

 

이런 식으로 간장 된장도 담갔었는데 이건 발효기간이 길 뿐

고추장 담그는 것보다 더 수월했다.

장가르기를 해서 간장은 잘 먹고 있고 된장은 서너달 발효가 더 필요하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슬로우푸드.

메주쑤기를 생략했음에도 7,8개월을 요하는 걸 보면.

현대를 살며 필요한 것은 정보임을 절감한다.

정보가 없는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살림 담 쌓았던 내가 장 담갔다고 하면 기함을 한다.

살림꾼인 자신들도 감히 해보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니 진정

살림꾼이 되었나보라고 오해도 한다.

나는 다만 좋은 정보가 있고 심심해서, 너무 여유로와서 거져나 다름없는약간의 수고를 보탰을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