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자발적 노동의 즐거움(17.6.28)

heath1202 2017. 6. 30. 13:06

직장에 다닐 때는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 휴일 아침에 원없이 자는 것이 행복이었고 일요일 오후가 우울한 사람이었지만

직장을 놓은 후에는 오히려 늦잠 자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의식적으로 일과를 정한 것도 아닌데 그러하다.

기상 시간은 잠자리 자는 시간에 연동되기는 하지만 잠자리에 늦게 들어도 수면 시간이 하루 대여섯 시간을 넘기지는 않는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부터 꼼지락거려 공사하느라 다락에 처박아두었던 대자리를 마당에 펼쳐놓고 빨았다.

솔로 시원하게 문질러 빨아 세워놓고 물기 빠지는 동안 화단의 풀을 좀 뽑았다.

여름은 아무리 열심히 풀을 뽑아도 비 한차례 오고 나면 또 파랗게 풀이 돋고 애써 못본 척 며칠이면 한 뼘 넘게 자라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또 한 열흘 부탄 다녀오느라 집을 비웠더니 공사전 호랑이 새끼 뛰어놀게 생긴 화단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이겠어서 앞으로 일이든 풀이든 당당히 맞서고 보는대로 해결하리라는 신념으로 제초에 착수해 두 개의 화단 중 하나의

제초를 끝냈다.

생각해 본 건데, 자발적 노동은 일이 고되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 내켜서 하는 공부가 즐거운 것처럼.

일의 계획, 과정, 결과를 오롯이 내가 주도하고 음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요즘 내가 하는 노동은 노동 시장에 나가면 정말 헐값에 팔리거나 아니면 팔릴 가능성이 없다.

사회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처음 하는 신기한 일처럼 나의 일들을 즐기는 것 같다. 오롯이 내가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된 일들.

개인적 가치에 한정되는 한계가 장차 극복할 일이겠지만 작으나마 주도적으로 삶이라는 것을 영위하고 들여다 보는 기쁨은 정말 신선하다. 

일하다 보니 이주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이 촉박해 허겁지겁 머리도 못 말리고 갔더니 새 얼굴들이 있다.

그동안 네 명중 한 명이 생업으로 나오지 못해 영 모임에 활력이 없어 존폐가 우려되었는데 반가운 일이다.

읽어야 할 책은 "82년생 김지영"이었는데, 나는 삼주도 더 전에 읽어둔 참이어서 내용이 좀 흐릿했다.

모임 구성원은 모두 나보다 너댓 살 부터 띠동갑까지 어리다.

그리고 나처럼 육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이와 바꾸어 얻은 여유라 하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내가 정년이 되었어도 이렇게 부러워 했을까.

쉬기에 약간 이른 내가 쉬고 있기 때문에 부러운 걸 것이다. 그래서 나도 더욱 흡족한 걸 것이다. 너무 늙지 않은 나이의 귀한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