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아름다운 부여

마침내 가을의 문턱, 무량사(17.9.2)

heath1202 2017. 9. 7. 01:03

참 더웠던 여름이었다.

꼬박 한 달을 채우고 넘치는 30여일 동안 폭염주의보가 내렸었다던가.

물리적으로 넘쳐나는 게 시간이 된 올해, 만성병이 될까 두려운 것이 한가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도 많으니 다음 언제 더 좋은 때 하자."며 툭하면 일을 미루는 것이다.

아마 다른 해 같으면 아무리 더워도 짧은 나들이 쯤 몇 번은 했을 텐데 올해는 정말 문밖도 안나가는 날도 여러날 된다.

구름이 투약 때문에 하룻 밤도 자고올 수 없다는 좋은 구실이 있었지만 그렇다면 한나절 나들이마저 접을 구실은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맛, 가을이었다.

달력이 아니어도 가을은 가을이라는 것을 알겠다. 햇살이 따갑긴 해도 온몸을 칭칭 엉기던 습기가 없어졌고, 하늘이, 구름이 현란하게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고 풀벌레 울음이 낭자해 졌다.

전에는 촘촘히 나를 죄는 시간에 붙들려 발버둥 치며 헐떡이던 삶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의 헐거운 코 사이로 내 삶이 걷잡을 수 없게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내가 잡지 않은 시간은 여전히 쏜살처럼, 연기처럼 허망한 것이니, 가지라고, 네 것으로 하라고 내 앞에 주어진 시간도 차지 못한다면 나는 시간을 탈취당하듯 살았던 때보다 더 자책하고 자탄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움직여야 한다. 좀 더 몸을 놀리고 좀 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허무의 공동에 빠지지 않을 테니.


여러 달 만에 무량사에 왔다.

사실 요즘 밥맛이 돌지 않아 군것질로 끼니를 잇던 참인데, 문득 무량사 앞 광명식당의 묵과 버섯이 섬광처럼 떠올라 참을 수 없게 당겼던 것이다.

광명식당은 유홍준 교수도 좋아한 걸로 아는데, 암튼 메뉴 구성이 적절하고 깔끔하고 맛도 좋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입장료 생각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어 무량사를 돌았다.

언제부턴가 입장료가 3천원이나 되어서 내 좋아하는 무량사가 방문객들에게 불만을 사지 않을까 걱정된다.

방문객은 세 사람이었고 절마당에 스님들과 보살들이 환한 낮에 풍등을 올리고 있다.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마당 한 켠에 차일이 쳐있다.

9월 16일 인가 김시습 관련해서 행사가 있다는데, 보폭이 잘 맞는 벗이 좋다면 한 번 다시 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