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아름다운 부여

부처님 오신 날 밤, 무량사(17.5.3)

heath1202 2017. 5. 6. 06:50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며 존재에 대한 절벽같은 절망을 직면하곤 하지만, 천생 오만방자하게 타고 났는지 신에 의탁해 볼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신이 좋고 나쁨이나 유용, 무용의 까닭이 아니라 어쩌면 나는 삶과 끝없이 싸우고 심지어 다치는 것에도 아픈 쾌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마조히스트 임에 분명하다.

매사 그런 면이 강하다.

존재의 문제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문제에도 남과 협동하거나 도움 받기 보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드잡이를 하는 편이다.

조직 속에 사는 이로서 정말 해악이 될 좋지 않은 성향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고치기 쉽지도 않고, 새삼 고치고 싶지도 않다.

알게 모르게 밉상 노릇 꽤나 하며 살아온 한평생이리라.

다만 돕는 일에는 그리 인색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불성이라고는 나는 누구인가 생각이 좀 많은 것 말고는 없는 나지만, 그래도 나는 초파일 밤에 꼭 무량사에 간다.

등도 아름답고 철도 좋아서 일년 중에 행복한 날 하루를 보태는 날이다.

게다가 기와 불사도 꼭 한다.

부처가 내 원을 들어주리라 믿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소원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게 기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그리 되도록 살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만원 짜리 기와불사로 나의 기분이 퍽 좋아진다. 저렴하게스리.


올 무량사 초파일 밤은 유난하게 좋았다.

낮에는 와 본 적이 없지만 그 왁자함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으니, 밤의 적요함과 정겨움이 배가 된다.

유서 깊음에도 등수로 보자면 대찰은 아닌 무량사의 조촐한 절마당을 고운 등 아래 서성이는 일보다 고운 일은 일상에 별로 없다.

마음 깊이 사람을 품고 아끼는 일 말고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