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너와 더불어 현실에 참여한다.
나는 너와 더불어 현실을 나눠 가짐으로 말미암아 현존적 존재가 된다."(마르틴 부버)
요즘 읽은 몇 권의 책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기를 독려했다.
내가 수긍하든 말든 그것은 보편적 가치인 듯 싶다.
한달 동안 내 시간을 계획하며 내가 가장 고민한 부분도 그 부분이었는데,
살아보니 기대보다 시간은 너무 짧았고 따라서 하루 안에 집어넣을 계획은 많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을 사는데 있어, 내가 고독으로 시들지 않으면서 또한 사람에 치이고 지치지 않을 만큼의 적정한 황금비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스케줄이 짜여졌다.
내 일과의 기본 베이스는 다음과 같다.
오전은 전날 늦게 자므로 조금 늦게 일어나 빈둥거리거며 슬슬 잡다한 집안일을 한다.
게으른 시간은 허무할 만큼 금방 가버리지만 그 게으름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만 누리게 되는
백수의 크나큰 미덕이고 다른 일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므로 아까워 하면 안된다.
점심 무렵에 씻고 단장한 후 짐을 꾸려 나가 세 시간에서 네 시간을 책을 읽는다.
그러면 저녁이 되고 한 시간 동안 운동삼아 걷는다.
이상은 한달 동안 평일에 거의 준수해 온 일과(routine)인데, 타인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개인 활동으로서
내가 어떠한 결핍도 느낄 겨를 없는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평가: 하지만 아무리 혼자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 이상이면 고립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 내가 삶의 질적 고양과 건강을 위하여 고심 끝에 다음 활동을 추가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러 간다. 어렵게 찾은 아주 작은 동호회인데 참가한 지 두 주쯤 되어 도레미... 외우고
Long Long Ago를 떠듬떠듬 치고 있다. 회원들은 예의 바르고 유쾌하지만 필요이상의 친목도모는 모임의 취지에는 없는 듯해
마음이 편하다.
또 하나는 한달에 두 번 만나는 독서모임이다. 지난 주에 만나 읽을 책을 정했다.
회원은 아직 네 명 뿐이지만, 다들 독서 수준이 높고 똑똑하며 나와 달리 활동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배울 것이 많을 듯 하다.
마지막 하나는 4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12주 동안 실시되는 강좌인데, 열두명, 아니 열 세명을 떼로 만나게 된다.
적성에는 그다지 맞지 않지만 평생교육원 강좌 중에 그 중 해볼만하다고 여겨져 선택했다.
이렇게 세 가지의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무려 스물 세 명의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소읍에서 무려 반 세기를 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아는 이가 많지 않은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모르는 이가 없게 되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가짓수로는 세 가지나 되지만 워낙 띄엄띄엄 만나므로 마음의 짐도 없고 일과를 소화하느라 허둥댈 일도 없다.
현재로서는 딱 좋은 것 같다. 그림도 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이 정도 했으면 나름 노력한 것이다.
남들은 고작 한달 놀고 벌써 조바심이냐고 걱정하는데 말이다.
죽기 살기로 일하다가 일밖으로 나와보니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는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 여유가 일하는 이들에게 참 미안하지만, 내가 어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어쩌랴.
오늘 읽은 책의 한 챕터가 공산당 선언에 할애되어 있었다.
공산주의는 역사에서 패배했고 이제 진짜 유령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1848년의 선언이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점이
이 시대 노동자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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