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쁘띠부르조아의 안락(17.2.5)

heath1202 2017. 2. 5. 19:19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엊그제 벗들을 만났다.

이십년 넘는 우정을 잇고 있는, 사회에 나와 사귄 벗들 중 가장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다.

한 주 있다가 나흘 쯤 함께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최종 점검도 하고 없는 장비(내게 절대 없는 수영복 따위)도

구비할 겸 백화점에서 만나 먹고 마시고 소소하게 쇼핑을 했다.

커피숖에 주질러 앉아 그간들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는데 대부분들 참 부산하게들 보냈다.

일곱 중 한 멤버를 빼곤 모두 외국을 한 번은 다 다녀왔고 심지어 세 번까지 다녀온 이도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별다르게 한 일이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시간에 대한 강박이 무엇을 하도록 다그치는 강력한 채찍이 되는지 모르겠다.

피 같은 휴가를 빈둥거리며 녹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조급해져서 알차고 별다른 계획들을 세우는 모양이다.

나는 이제 시간이 많을 거니까 그런 강박이 없어서 느긋이 시간을 관망하게 된 것이고.

며칠 전 남미에 가자는 제안이 있었다. 세번째 제안이었다.  

첫번째는 38일 짜리, 두번째는 60일 짜리,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가 30일 짜리.

첫번째 두번째 다 거절했는데, 세번째 제안에는 결국 벌컥 화를 냈다.

출발이 3월 5일이란다. 내 퇴직일이 2월 28일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찼다.

아무리 남미가 가고 싶은들 무슨 중대한 미션도 아닌데 이렇게 쫓기듯 추진을 한단 말인가.

널널하게 살고 싶어 일을 접었는데, 이런 방식은 내 삶의 원칙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다.

나도 여행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도에 태극기 꽂는 것을 목표 삼고 싶지는 않다.

가고 싶은 나라, 그리운 나라가 생기면 가는 것이고 못가면 못가는 대로 꿈을 꾸면 되지 싶다.

여행을 실적 삼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쫓기듯 목표지향을 요구하니 화가 날 밖에.

사실, 이렇게 여행을 꿈꾸며 웬만한 데는 조금 아껴 돈모아 갈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벗들의 여행기를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모두가 참 선량한 사람들이고 여행에 사치하며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아쉬움 없이

그만한 시간과 경제가 허락한다는 것에 우리 모두 감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도덕군자연 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고 혼자서도 웬만큼은 잘 견디는 사람이지만 요즘은 공동체와 연대와 삶의 의미의 확장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나의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에 함몰되지 않고 자그마한 실천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 생각이 길고 깊으면 길이 보일 것이고 성장도 있을 것이다.

천천히, 차근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