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물은 나를 관통해 간 시간과 같다
서슴 없다 거두 절미, 무자비하다
후회, 용서, 주저, 회한
어느 것에도 빌미가 없다
강가에 서면 나는
도리 없이 또 처음 그 자리다
큰 의미가 없었더라도
가끔, 혹은 잠깐 환희의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덥혀진 강물의 따뜻함
그 아득해지는 노곤한 간지럼
물인 듯 내 몸인 듯 내 몸인 듯 물인 듯
기꺼이 삶에 취해 비틀거리던
좋은 때가 있었을 것이다
저녁 햇살에 물살이 잦아 들고
강물보다 먼저 식어가는 한 뼘 남은 해가
마지막 숨처럼 아득하다
몇 가닥 마지막 햇살이 무질러지고
이제 곧 거두어질 강물의 마지막 온기
나는 울지는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섧고
무연하니 강물에 날 실어도 좋을 듯 하다
강건너 산마을이
산그늘 속으로 깊어 진다
꿈이런가 점,점, 피어나는 등불
한낮의 온기가 으스스 기화하고
사람이 마냥 쓸쓸하다
무정한 사람이라도 이 맘때면
슬픔의 기미가 마음에 번져와
좋은 오월로도 이기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저물 녘에는 강가에 서서
먹물같은 강물에 나를 풀어 본다
풀어도 풀어도 네 속이나 내 사랑의 속이나
가없이 막막한 검은 물속이다
제임스 티소<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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