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겨볼 마음

날씨가 추워서(16.12.20)

heath1202 2016. 12. 20. 02:04

날씨가 추워서 

집에 돌아오니 눈물이 났다

그래서 비정규직 쉼터

꿀잠 펀딩에 돈을 보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도

돈이 없으면 재주가 메주만도 못해지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도 돈을 좀 보냈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구백개 다되어 가는 펀딩 프로젝트

너무 많아 고민도 필요 없이

네 개를 골라 이만원 삼만원을 할당했다


요즘 내 불안의 중심은

사십년 묵은 내 집의 과한 따스함

내 안락의 장차의 안위가

또 내 잠재적 비정의 발호가 무서워

나는 짬짬히 푼푼한 선행을 적립한다

면죄에 드는 돈은 고작 이삼만원

그만하면 헐값이다

나는 삼만원 짜리 0.1도의 온기로

내 불안한 따스함을 엄호하고

나의 미안함을 무마하고

내 치졸함과 인색함을 용서한다

가끔 추위가 사무치는 날엔

나는 여기저기 펀딩을 헤집고 다니다가

일수 찍듯 몇군데 이만원 삼만원을 찍는다

내 온기의 상한가는 딱 삼만원

할인가는 이만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도리는,

없다


나는 춥지 않다

삼십년을 방비한 내 날림집은 이제 춥지 않다

내게 제일 무서운 적은 추위

어려선 얻어 맞는 일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았는데

대해보니 그것도 추위 밑이었다

춥지 않으니 따뜻해서 슬프고 좋다

맞는 것쯤 붙어보잘 만큼 배짱이 생긴다

삶이란 것은 슬픔이 베이스

기쁨은 잠깐 고명일 지 모르지만

우리가 조금 따뜻하기만 하다면

태생으로 추운 우리의 피가 

가끔 무방비로 헤퍼져 돌 만큼만 따뜻하다면

우리 그 슬픔을 살아 내어

삶이 왈칵 뜨거워지기도 하는 걸 거다



                                  (뱅크시, 저널리즘)



'다시 새겨볼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이 없는 어느 가을 저녁 소회(16.12.27)  (0) 2016.12.27
교회 옆을 지나다가(16.12.21)  (0) 2016.12.22
금물(16.12.15)  (0) 2016.12.15
추운 날 II (16.12.2)  (0) 2016.12.02
제끼고 싶은 날(16.12.2)  (0) 2016.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