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워커 고친 날(16.11.16)

heath1202 2016. 11. 17. 01:49

밑축이 닳아 굽이 허옇게 다 드러난 줄도 몰랐다.

이런 채로 지난 주말 서울에서 만 오천보나 걸었다.

큰일날 뻔했다.  조금만 더 신었더라면 영영 복구 못할 뻔 했다.

왼쪽은 이미 굽을 어지간히 잠식해 붙여놓은 밑창이 평평하지 않고 살짝 굽었다.

늘 신는 신도 아닌데 이 신발은 삼년 째 세번째 밑축을 갈았다.

내 삶, 얼마나 걸어왔는지 새삼 궁금하다. 아무리 꼼지락거리기 싫어해도 어지간히 걸었던 거지.

한 쪽만 유난히 닳았다는 것, 말하자면 내 걸음이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실로 오십여 년 만에.


신발을 고치느라 차를 주차하고 신 고치는 사이 노점에서 감도 단감, 홍시감 해서 두 봉지나 사고 야채도 또 사고 해서

두손 가득 짐이 무거운데 또 엊그제 국자목이 똑 부러져 나를 황당해 웃게 만든 생각이 나 다이소 들러 그 중 고급지고 이쁜 삼천원짜리 

 국자를 보태 낑낑거리며 차에 돌아와 보니 내 차를 낡은 흰색 포터 한대가 막고 있다.

경적을 한 번 울려도 주변에 기척이 없어 시동 걸고 잠시 앉아 쉬는데 허겁지겁 한 남자가 길옆 가게에서 뛰어나온다.

보니 로또 복권방이다.  남자는 육십 칠십 사이 쯤의, 행색이 자신의 트럭 못잖게 세월의 빗발을 제대로 맞아온 인생이다.

복권당첨의 꿈에 기대는 삶.....

또 보니 복권 가게 옆의 레코드점에 가게 폐업을 알리는 에이포 종이 한장이 붙어 있다. CD가 할인이겠다.

나도 한 때는 단골이었는데, 어느 결엔가 인터넷 서점으로 갈아탔고, 그 동안에 그 가게에선 좁은 가게 안에 큰 찜솥을 걸어놓고

안흥찐빵을 팔았었다. 그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음악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던 하얀 김. 그럴 때 생각했다.

영혼의 포만 만으로 살 수는 없는 거지. 음악과 찐빵은 어쩌면 극적인 양립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왜 그리 서글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게가 결국 문을 닫는다. 잘되어 문 닫는 것은 결코 아닐 테지.

낯익은, 참 오랜 세월을 그 가게에서 늙어온 여주인은 늘같은 조금 무심한 표정으로 평소의 자리에 앉아 있다.

내가 다시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면 가게 문이 닫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안녕하길.



 

그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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