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삶에 대한 얘기도 해 본 날(16.5.4)

heath1202 2016. 5. 4. 21:43

오늘 한 사내가 말했다.

내 삶을 글로 옮기면 A4  한 장도 안 나올거요.

돌아보면 잡히는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고 몸은 부실해지고 머리숱은 성글어져 거울도 보기 싫소.

삶에 무얼 바랬더냐고 하하 분위기 흐트리며 짐짓 가볍게 웃어 넘겼지만, 살며 그런 기분 가끔 안 느끼는 이가 어디 있으랴.

내가 말했다. 나답지 않게 모범답안적으로.

보통 사람이 사는 일이 대단한 획을 그을 일이 얼마나 될까요.

다만 일상의 사소함일 망정 가치를 읽어내어 보려 애쓰며 사는 것 아니겠느냐고, 또 그리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그리 말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대충 보기에도 젊은 날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년이었음에 분명했을 그의 사그러져가는 미모가

나도 조금 서글프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꿈까지 크고 아름다웠음에 분명한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그의 눈에 나 사는 꼴은 조금 더 단단하고 야물어 보이는가 보다.

고맙게도 에이포 용지로 두어장은 쓸거리가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피식.

다를 게 무어 있겠소. 다만 당신이 당신의 공허를 웅얼거리는 동안 나는 뭔가 목적 있는 사람처럼 책에 코를 박고 있거나

조금 더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 뿐이지 마음이 숭숭, 헛헛한 바람이 드나드는 것은 당신과 다름없다오.

여전히 삶은 오리무중인 것 같소.

남의 기운을 쪼옥 빼는 허무에 쩐 얘기가 시도 때도 없는 그는 무기력의 아이콘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번 날엔 드물게 에곤 쉴레 따위의 색다른 주제로 얘기를 나누어 모처럼 즐겁게 해준 잠깐 말벗이기도 했었다. 

 

거울도 보기 싫다는 그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또 예쁘지 않은 나는 더욱 자주 거울이 보기 싫지만, 그건 마냥 슬프기만 한 일일 것이므로 

삶을 보는 각과 배율을 조금만 달리 해 보자고 허전한 말을 해본다.

참으로 욕망을 간추리고 다독여야 할 때가 되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