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다녀갔습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는 그러지 않더니 서툰 운전을 시작한 후로 집에 오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집에 다녀 간다고 집밥이라는 것을 챙겨달라는 것도 아니고 들고갈 반찬통 하나 없는데
(고맙게도 사먹는 밥도 음식 품평을 하며 맛있어 하고, 또 절대 반찬 따위 해달라고 조르는 독립성 없는 아이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손맛을 모르는 좀 가여운 아이인 듯도 하군요.)
그래도 좋아라 집이라고 와서는 실컷 뒹굴거리다 갑니다.
가야 할 때가 되면 가기 싫다를 연신하며 나서는게 안스럽기도 합니다.
나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나이 때 어떡하면 집에서 달아날까만 궁리했던 것 같은데.
암튼, 밥은 안해 주어도 억지로 꽃구경을 시켜가며 적당히 끌고 다녀 주니 저도 좋아하고 나도 마음이 좀 편합니다.
아이를 보내고 오후에 잠깐 청양 칠갑산 언저리를 다녀 왔습니다.
미세 먼지로 시야는 갑갑하고 금세 목도 칼칼해 졌습니다. 그냥 집에 붙어 있을걸 싶을 정도로.
한반도가 지천으로 꽃인 때문인지 청양 벚꽃길에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오랜 만에 장곡사에도 들렀습니다.
작년에 손을 많이 보더니 아주 말끔해졌습니다. 다행이 변화가 과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절이 참 좋습니다.
혼자 부처님 앞에 꿇었다가 나가는 불자들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나는 절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보기만 합니다.)
수선스러움 없이, 어쩌란 지시 없이, 자기 혼자 하고 가는 기도가 좋습니다.
내 성격에 딱 맞는 듯 싶으니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나를 낮추고 간절하게 기도할 때가 있을까요.
신이나 누구를 받들고 경배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또다른 나를 만난다는 의미로서.
그렇다면 그 또한 참 새로운 생의 모습이겠지요.
오늘은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렸지만, 곧 청명한 하늘 아래 싱그러운 어린 잎을 볼 것 같습니다.
전에 보던 녀석의 아이일까요. 생긴 건 똑같은데 앳되어 보이는 것이.
그렇다면 어미처럼 법당에도 앉아 졸고 그러겠네요.
저렇게 법당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에도 눈 한 번 뜨지를 않는군요.
까칠한 우리 구름이도 여기에 데려다 놓으면 이리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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