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내가 운정이처럼 산다(16.4.8)

heath1202 2016. 4. 8. 00:20

나의 개 운정이는 지름 4미터의 원 안에서 산다.

아무리 용을 써도 그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설 수 없다.

종일 좌로 돌고 우로 돌아가며 서성이는 게 일이다.

길고양이도 좀체 들르지 않으니 겅중거중 뛰어오를 일도 없다.

 

다리도 길고 어깨에 근육도 야무지고 단단한데 그간 삼년의 삶이 그러했다. 

올겨울까지 운정이가 보냈던 마당 한 켠  보도블럭이 콩댐이라도 한 듯 석달이 지나도 반들거린다.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도 산다는 봄인데 운정이가 다져놓은 보도블럭 틈으는 바늘만한 잔풀 한 포기도 돋지 않는다.

그리고 화단으로 옮겨져 묶인지 석달, 이제 화단이 그렇기 시작했다.

종일 화단을 서성이며 다지고 있다.

달리 할 일도 없다.

겅중대고 서성이고 앞발에 턱을 받치고 시름없이 누웠다가

가끔 택배기사가 오면 반가워서 짖고 뛰고 그러다 다시 하염없이 서성이며 주인을 기다리는 일 뿐.

 

운정이의 이름은 파주 운정역에서 따왔다.

운정역을 신이나 쭐래거리며 돌아다니다 유기견 센터로 왔다.

운정이의 과하게 명랑한 성격으로 보아 유기된 것은 아닐 거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집을 나서 세상 신기해 신이 나서 기웃거리며 다니다가 돌아가는 길을 잊었을 거다.

그렇게 유쾌한 운정이가 이제는 저리 산다.

단 한번 줄을 끊고 집을 나간 적이 있다.

내가 목격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총알처럼 피융, 찰라에 디딤돌이 있던 낮은 담을 용수철처럼 뛰어넘어 어디론가 사라져 그날을 돌아오지 않았다.

천품을 좇는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했다.

찾다가 포기하고 부디 개장수에게나 붙잡히지 말길 빌었다.

그런데 다음날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운정이가 담밖에서 담벼락에 매달려 서서 낑낑 거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는 반갑고 서러워 자지러져 울었다.

그렇게 돌아온 후 나는 녀석을 믿을 수 없어 가혹하지만 가끔씩 내 입회 하에 풀어주던 줄을 좀체 풀어주지 않는다.

자유가 인에 박히면 안되므로.

 

나는 28킬로미터 줄에 연결된 요요처럼 산다.

아침이면 28킬로미터를 갔다가 저녁이면 어김없이 28킬로미터를 돌이켜 온다.

자주 벗어나고 싶다.

18킬로미터를 가던지 38킬로미터를 가던지 아니면 가끔은 0킬로 미터도 꿈쩍하지 않던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생각만 하며 산다.

튕겨져 나가게 된다면 나도 운정이처럼 겁에 질려 금세 돌아와선 문 밖에서 낑낑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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