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내가 내가 아닌 듯 산다. 그리 바쁘다.
그래서 삶의 주체성을 당분간 포기하기로 한다.
삼월이고 삼월을 맞기 전에 마음의 심호흡을 무수히 하며 대비했으나
막상 삼월을 맞고 나니 내 의식이나 계획을 가뿐이 넘으며 일들이 나를 끌고 간다.
저녁이면 다시 못깨어날 듯 고꾸라지고 자정 무렵이면 부싯부싯 깨어 멍하니 여명을 맞기도 한다.
지난 주말은 날씨가 험했다. 심지어 삼월에 맞지 않는 돌풍과 천둥까지 한참을 요란스러웠다.
다행이다 했다. 삼월 첫 주, 빈둥거리며 보내도 되겠구나 하며.
게다가 머리까지 많이 아프니 주말을 한없이 게으름 피워도 하나 속상하지 않았다.
사월은 아직 멀고(하긴 사월이라고 다르랴) 또한 봄이니 앞으로도 많이 바쁠 것이다.
사는 일에 한가할 때가 얼마나 되랴마는 겁을 바짝 집어먹은 이 나이가 더욱 삶을 자신없게 한다.
한편 다행스럽게도 위안으로 기쁘게 맞는 분주함도 있기는 하다. 꽃소식에 구름처럼 들뜰 마음.
지금쯤 지리산 자락 성급한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싶어 몸 닳고 있지는 않는지 또 매화 봉우리는 얼마나 영글었는지.
그 꽃들을 보고 싶어 나도 벌써 애가 닳기 시작한다. 길어야 한 두주 잠깐의 눈부신 세상.
한나절 꽃구경으로 얼마나 길게 고단한 시간을 순하게 대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툭하면 목이 메이는 마른 삶에 우는 아이 입안에 넣어준 단 사탕 한알처럼
꽃에 홀린 그 마음을 오래오래 머금고 조금씩 녹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달리 더 기쁜 소식이 찾아와 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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