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즐거운 고민(16.4.1)

heath1202 2016. 4. 1. 13:40

 

어느 걸 먼저 읽어야 하나?

이탁오에 관심이 가서 먼저 선택했었는데 불쑥 끼어든 "DEATH".

아무래도 틈틈이 읽기에는 둘 다 분량이 꽤 되니 주제별로 읽기 쉬운 "DEATH"부터 읽는 것이 합리적일 듯.

"이탁오 평전"을 읽은 동료 하나가 책이 좀 어렵다고 하기도 하니 이단아 이탁오는 좀 더 있다 만나는 걸로.

사월 첫날이다.

싱그러운 날을 꿈꾸어보자.

 

먼저 읽은 에라스무스 평전의 마지막 대목이 인상 깊다.

에라스무스가 죽음을 맞던 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펴낸다.

"그들은 장기를 두는 사람처럼 분명하고도 냉정하게 적에게 배려나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되며,

허용된 것이든 허용되지 않은 것이든 상관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이익과

헤게모니를 얻어내야 한다.  마키아벨리에게 권력과 권력 확대는 최상위에 위치하는 의무이며

성공은 군주와 국민의 결정적 권리이다."(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에서)

에라스무스의 이상주의는 이러한 현실주의 속에서 아무련 힘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에라스무스, 실망한 이 늙은 남자,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해서는 안될 이 늙은 남자가 전쟁과 유럽의

분열이라는 혼란 한 가운데서 유산으로 남겨놓은 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 도래할, 그리고 결코 막을 수 없는

인류의 인간화에 대해 모든 종교와 신화가 갖고 있는 희망의 원초적 꿈이었으며, 이기적이고 일시적인 격정에

분명하고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리라 희망하는 꿈이었다.......그의 뒤를 이어 '비인간성이 악덕 중 가장 나쁜 악덕'

이라 생각하고 "나는 그 악덕을 경악하지 않고 생각할 용기가 없다"라고 말하는 그의 제자 몽테뉴가 통찰과 관용을

계속해서 전파한다.  스피노자는 맹목적인 정열 대신 "정신적 사랑"을 요구하고 디드로, 볼테르, 레싱, 그리고

회의주의자들과 이상주의자들, 그들이 동시에 모두를 이해하는 관용을 위해 편협에 맞서 싸운다.  실러의 문학에서는

세계 시민의 정신이 활기차게 일어나고, 칸트는 영원환 평화를 요구한다.  톨스토이나 간디, 롤랑에 이르기까지 타협의

정신은 논리적 힘으로 폭력의 자위권 옆에서 자신의 도덕적 권리를 요구한다. 바로 불 같은 분열의 그 순간에 인류의

평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나타난다.  인류는 도덕적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환상의 위안 없이는, 마지막 화합의 그

꿈 없이는 결코 살 수 없고 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