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끝나갑니다
올 삼월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삼월이려니 정하고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람을 기꺼이 견뎌내었고
일상의 진빠지는 소소하나 끝없는 무의미들도 기꺼이 삼켰습니다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고자 애썼습니다
거의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참 나를으로 정성스럽고자 했습니다.
어느 때는 삶과 힘겨루기를 하는 심정이 그만 울고 싶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지막 힘은 생각보다 큰가 봅니다
견디다 보니 견딜만 했습니다
딱 올해까지만 그러려고 합니다
올해가 끝날 때엔 더 이상 남은 것 하나도 없이 내가 비어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할 참입니다
잠깐 사이에 다른 세상을 성큼 넘나드는 아이도 있고
다가서면 겁에 질려 자꾸만 뒷걸음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 모르쇠 천진해지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정하게, 다정하게, 그리고 숨을 길고 고르게 쉬어가며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다보면 어느 틈에 슬그머니 대답이 돌아오고 있고
그러면 문득 엿보는 아이들의 세상이 푸른 우주처럼 신비로울 때가 있습니다
올해 그간 못한 채 묵힌 사랑을 하나 남김 없이 흠씬 쏟아내고
훌훌 내 생의 삼십년을 마감할 결심입니다
어쩌면 이 오묘한 아이들이 내 마음을 붙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이제 하루 남은 삼월입니다
내 생에 가장 투정없이 보낸 한 달입니다
그간 나를 붙들어온 내 안의 문제들 한해만 밀어두자 하고 묵묵히 일상을 성실히 살았더니
제법 보람되고 수월하게 간 삼월입니다
이제는 사월이지요
일년에 한번 사월에만 읽는 "황무지"도 올해는 그저 딴 시대 딴 세상 얘기로 밀어두고
이제 흠씬 봄비에 젖는 싱그러운 들판을 그려봐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참 대화가 어려운 아이와 마주 앉아 오목을 두었습니다
아이가 연신 까륵까륵 나를 보며 웃었습니다
나도 막 웃었습니다 행복했지요
정말 잘 산 삼월인가 봅니다
지금도 이렇게 흐뭇한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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