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내 어머니의 공덕쌓기(15.12.7)

heath1202 2015. 12. 7. 19:17

내 어머니는 불교신자이다.

초파일에나 절에 다니던 양반인데, 혼자 되신 후로 더욱 독실해지셨다.

그래봐야 절에는 한달에 한두 번 다니시는 정도지만 일상이 많이 달라지셨다.

불교방송도 자주 보시고 독서라고는 해본적이 없는 양반이 글씨 큰 불경을 앞에 놓고

해독하느라 끙끙대시기도 한다.

자식들이 곁에서 위안이 되지 못하니 어디든 맘 붙이는 건 좋은 일이라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큰 절에 가면 좋은 향이라든가 염주 같은 것을 사다 드리곤 한다. 캄보디아나 라오스 같은

불교국가에 가면 공들여 조각한 아름다운 자그마한 불상을 구입해 선물도 해드린다.

확실히 노인에게 종교라는 것은 대단한 위안 임에 틀림없다.

스님 말씀이 어머니께 가장 큰 감명이라 종종 얘기 중에 인용하기도 하신다.

주된 내용이 늘 "욕심 내지 마라"인데, 내 맘이 그 맘이라 나도  "엄마도 늘 인정있고 맘편하게 그리 사시우"하며

맞장구를 쳐드린다. 아닌게 아니라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 너그럽고 많이 퍼주시는 편이라 인심을 꽤나 얻고 계시다.

 

어머니께풍산이라는 엄청나게 큰 개 한 마리가 있다.

오빠가 어쩌자고 푼수없이 노인에게 그 큰 개를 떠안긴 것이다.

어머니께 온지가 칠팔년은 된 것 같은데 이제 어머니께는 보통 힘에 부친게 아니다.

줄을 끊고 뛰쳐 나가 동네 개며 닭이며 해친 일이 몇 번인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람한테는 온순하다는 것.

어쨌든 덩치가 커 놓으니 먹기도 많이 먹고 싸기도 많이 싼다.

가끔 말짓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에고, 이노무 자식. 자꾸 말썽 부릴겨? 그러면 때려 줄거여."하며

매질도 한 두대 하시는데, 이 덩치 큰 놈이 그럴 때마다 설설기며 애절하게 쳐다보는 통에 어머니 마음은

금세 허물어져, "에고, 다음 생엔 꼭 사람으로 나거라."하며 짠해 하신다.

그러기가 일상이다. 혼내고 위로하고, 위로하고 또 혼내고. 나는 생각한다. 풍산이 기르다 울엄마 성불하겠네.

어머니가 열불을 낼 때마다 힘에 겨운 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말 못하는 짐승을 가지고 어찌할 건가.

사실 그동안 풍산이가 하도 늠름하고 잘생겨서 달라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워낙에 꼴이 좋으니

혹시라도 잡아 먹힐까봐 못미더워 이제껏 힘들다면서도 품고 살아온 어머니다.

둘이 옥신각신 하고 있는 것을 보다가 또 둘 중 누가 누구를 배웅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 뜨거워지기도 한다.

어머니가 풍산이를 먼저 보내야겠지. 어머니를 위해서도 풍산이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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