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깨어진 옥개석 조각을 쓰다듬어 보았다
고요히 그러고 있노라니 너를 만지는 듯 가슴이 뭉클했다
돌이 나지막이 말을 했다, 돌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돌이 품은 세월을 담담하게
고개 주억이며 들어줄 수 있을 듯 했다
돌이 따뜻했다
흐르는 세월에 결이 깊어가는
대웅전 배흘림 나무기둥에 가만 볼을 대어 보았다
나는 나무테의 한점 중심에서부터
한켜 한켜 쌓아온 그 모든 이야기를 알 듯 싶었다
향기로이 풋내 나던 나무의 처음 목숨부터
담담히 스러져 소멸을 향하는 이날까지
나무가 내게 들려주는 목숨의 길을 알 듯 하였다
수백년 세월 쯤 나도 품자면 품을 듯도 싶었다
햇살이 잠깐 머물다 가는 폐가의 마루 한 쪽
잠깐 사람의 삶에 깃들었다 버려진 사소한 물건들
깨진 거울이라든가 폐가전제품이라든가 사금파리
아니면 눈에 띠지 않는 작은 것들, 풀꽃이나 벌레나 무엇이나
어느 때부턴가 다들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듣다가 어느 땐 눈물이 날 듯 하고
어느 땐 슬며시 입꼬리 실룩이며 웃음도 났다
오, 그랬느냐고 한 마디면 되었다
어느 날 네가 그믐으로 멀어진 뒤로
사람 아닌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미쳤음에 틀림없다
실은, 먼저 말을 건넨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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