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을 써 놓고 울뻔 한 후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떠오르는 대로 쭈욱 열거해 본다.
이러다보면 스스로 정체 파악이 될까. 별로 알고 볼 것도 없는 인간인데 구구하구만.
나는...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학대수준으로 머리를 쓴다.
나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생각은 많지만 아는 것 한에서는 쉽게 결론 낸다.
나는 정신의 안녕이 두려운 사람이다. 종교를 가질 수 없는 한 이유다. 끊임없이 내 안에 싸움을 붙여본다.
나는 인간에 대해 경멸, 환멸이 있다. 낱낱의 인간들이 보이는 지리멸렬함을 견디기 어렵다.
나는 인간이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신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시골에 사는 것이 좋다. 특별히 도시에서 구해야 할 것이 문화적인 것 말고는 없다. 도시의 백화점도 마트도 가지 않는다.
나는 도시생활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지하철 안의 지친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 우울하다.
나는 여러 사람 틈에 있으면 보통은 쉬이 피곤해져 얼른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여러 사람 틈에 있으면 말수가 없어 그림자가 된다.
나는 브랜드나 명품에 무심하다. 공들여 비싼 장비를 구할 만큼 무언가 몰입하는 일이 드물다. 투입-산출의 공식을 철저히 따져 일을 시작하는 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스타일에 관심이 있지만 아름답지는 않다. 아주 싸구려 옷을 입으며 만족한다.
나는 감사하게도 그럭저러 먹고 살 만하다. 더우기 욕망이 적으므로 불평할 일이 없다. 늘 감사한다.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나 실천이 없다. SNS에 좋아요 또는 열심히 살고 있는 벗들에게 격려글 남기는 것, 힘닿는 대로 여기저기후원금 내는 것, 봐야 할 영화 꼭 봐 주는 것으로 할일을 가름한다.
나는 구속과 복종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종교도 가질 수 없다.
나는 직업을 뺀 일상의 노동에 철저히 소홀하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근근이 연명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무심하므로 관대하며 결과적으로 존중하는 셈이 된다.
나는 개인주의자로서 남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 쉽게 평하지 않는다. 그런가보다 한다. 공익을 해치지 않는다면.
나는 남과 갈등이 있을 때 언행에 아주 냉정하고 신중하므로 절차상으로 이기는 싸움을 한다.
나는 행동에 비겁한 편이다. 학교 때 점거농성으로 무기정학을 맞은 적이 있긴 한데 그건 의식의 치열함 때문이었기보다는 친구들과의 의리로 동참한 때문이었다.
나는 요즘 연달아 한 작가의 책을 3.5권 읽었다. 어느날은 종일 한 연주가의 음악을 듣고 또 어느 날은 종일 한 작곡가의 음악을 듣는다. '두루 널리'에서 '한놈만 팬다'로 바뀌는 중인가 보다.
나는 일대 전환기를 맞으려는 참이다. 개인적으로 대략 삼십 퍼센트의 두려움과 칠십 퍼센트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속속이 온전한 구석이 없어 이렇게 날마다 욕지기 치밀게 빡치다가는 속병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류근 시인을 무지 좋아한다. 솔직히 시도 좋지만 산문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분방함과 순정한 울분을 좋아한다. 그리고 진정 슬픔을 아는 사람이어서 좋다.
나는 유물론자다. 어마어마한 내 잡념을 감당해 내는 뇌의 작업에 감사한다. 죽은 후에 영혼 따위 남는다면 무지하게 피곤하겠다.
나는 명쾌한 머리에 비하면 정념이 많은 편이라 머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적잖다.
나는 사람들과 일상의 주제를 가지고 길게 얘기를 나누는 편은 아니지만 담백하고 재치 있는 한 두 문장으로 주변을 재미있게 해준뒤 홀연 사라진다.
나는 know-it-all attitude를 아주 싫어한다.
나는 논리적이며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잘 믿지 않는다. 불가지한 일들은 그냥 한 쪽으로 치워두지 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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