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을 수 없어서
나는 내 삶을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는 신도 믿을 수 없다
못 믿을 사람이 믿는 것을 믿을 길은 없는 거다
또한 못 믿을 중에 가장 못 믿을 사람은 나이니
나를 믿지 못하는 내가
무엇을 믿은 들, 믿지 않은 들, 당연히 믿을 수 없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참 막막하긴 하다
수백 수천의 갈래를 앞에 두고
확실한 정처라곤 죽음 뿐인 길을
한걸음 한걸음 지뢰밭을 건너듯 머뭇거리노라면
눈을 가리고 풍덩 몸을 던지고 싶은 때가 있다
날마다 나는 부산스레 많은 일을 해내지만
과연 그것들이 잘했어요 도장 찍어 줄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앞서가는 트럭에 분홍 돼지가 가득하다
다 자란 놈들이니 마침내
제 사명을 다하러 가는 길일 텐데
그 와중에도 옥신각신 툴툴거리고 있다
어찌 되었든 돼지는 곧 고깃덩이가 되고
우리는 그 살을 한 칼 뭉텅 베어 내어
든든한 저녁상을 차릴 것이다
해괴한 생각이 든다
불판 위에서 지글대는 돼지와
번들거리는 얼굴로 불판을 에워싼 우리들 간에
명료한 목숨의 경계를 지을 수가 없다는,
먹히는 것이 돼지라 해서
내 삶의 우위를 크게 자랑할 수도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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