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위험한 독서(15.8.27)

heath1202 2015. 8. 27. 10:29

근래 들어 나의 독서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독서량에 목표를 두고 속독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모든 책을 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읽는다.

내가 읽는 시와 소설은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학습의 텍스트가 되어 버리고, 

어려운 외국어 문장을 해석하고 페시지를 독해하듯 밑줄 그어가며 문장을 분석하고 단락의 전후를 살펴가며 꼼꼼이,

샅샅이 촘촘하게 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읽고 있는 것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읽은 것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겨지는 내 기억세포들 때문에, 나는 내 몸이 사라지기 전에 기억이 먼저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래서 타고난 이야기꾼인 천명관이나 박민규의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소설을 읽으면서도 나만 짐짓

지나치게 진지한 것이다. 엄숙주의를 실로 경계하는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학급에 꼭 있는 눈치없는 아이처럼 

사뭇 진지하게 아, 절묘한 표현이야, 주옥이야, 경탄을 하고 있다.

참, 허망한 일이다.

예뻤던 시절은 없었으나 총명하던 시절은 있었는데.

열명 중에 일고 여덟은 참 영리한 아이라고 끄덕여 주던 때도 있었는데.

하지만 이렇듯 농담을 다큐처럼 열공한다 해도 책을 덮고 나면 곧 잊고 말거다.

아주 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보며 '이게 그거였어?'하는 때도 심심찮게 있으니......

 

지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다시 읽으며 명퇴의 의지를 굳히고 있다.

어느 박학한 사회학자보다도 알기 쉽고 재미있게 팔구십년대를 분석했고,

하느님보다 더 명쾌하게 인생의 의미를 설파하여 내 앞에 내가 갈길을 환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약간의 두려움 속에 누군가의 격려가 필요하던 차에 비로소 명퇴를 해야 하는 당위가 나 스스로에게 주지되었다.

너무 재기 있어 얄미운 박민규. 고맙다.

모두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되기를 빌어 본다. 화이팅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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