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탓이라 믿고 싶은데 하여튼 요며칠 잠에 취해 있다. 평소보다 서너시간이나 앞당겨진 취침 탓에 한방중에 잠시 깨긴 하지만 몽롱한 의식을 끝내 깨우치지 못하고 다시 무너져 잠에 빠지곤 만다. 정말이지 부디 계절 탓이길, 그래서 잠깐 그러고 말기를 근거없이 빈다.
고작 며칠 간의 긴 수면에 나는 상당히 우울하다. 손에 쥐는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밤의 가장 깊은 심연을 보았다거나 빛과 어둠의 경계를 목도했다는 택 없는 착각 속에서 나는 나름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달리 매겨 보기도 하였던 것인데, 요즘은 그 알량한 보람은 고사하고 존재의 이유조차 미미하게 여겨지기조차 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뜨기 전, 나는 부디 그 순간이 어스름 새벽, 닭이 홰를 치기 전이기를 빌었다. 지난 밤에 나는 곤한 짐승처럼 길고 깊게 잤고, 나의 의식은 무덤 속에 갇혀 있었으므로, 적어도 이른 새벽 엄숙한 여명의 때를 지켜보며, 숨을 고르며 기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빌었다. 하지만 초여름의 날이 일찍 밝는 탓인가 세상은 벌써 명징한 제 빛을 드러내었고 마당의 개는 겅중대고 있었으며 고양이는 새날을 맞는 아침 운동을 하느라 집안을 질주하고 있었다. 울고 싶었다. 나는 또 하루를 내 삶을 돌보지 않은 채 죽여 보낸 거였다.
나는 좀 더 나를, 내 의식을 다구쳐야겠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건 나에게 참 정의 난감한 단어지만, 그래도 굳이 무엇이 행복한 삶이냐 통속적으로 물어 온다면, 그래서 꼭 답을 해야 한다면 울고 싶지 않은 삶이라 답하고 싶은데 또 어떻게 그 행복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살아있다'는 자각 속에 사는 일이라고 감히 답하고 싶다. 그 삶이 달든 쓰든 말이다. 별 볼일 없는 자신이지만 또 그 삶도 그다지 보잘 것 없지만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일깨우고 간절히 보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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