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를 읽다(15.5.29)

heath1202 2015. 5. 29. 22:55

며칠 전 읽고 무지하게 웃펐던 남덕현 작가의 짧은 산문'가게도 모르는 게!'의 내용은 이러하다.

 

작가가 글쓰기 모임 같은델 갔다.

모임에서 영향력 깨나 미치는 듯 싶은 이가 어느 여인을 심히 타박하고 있다.

로맹 가리를 모른다는 이유로.

"로맹 가리를 모른다고?"

......

"너는 어떻게 너도 모르는 글을 쓰냐?"

여자는 모멸감과 수치심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작가는 분노가 치민다.

그녀가 그녀도 모르는 글을 썼다고 어떻게 단정을 한단 말인가.

글을 쓰는데 로맹 가리는 알아서 뭐하나.

작가는 담배를 물고 싶은데 담배가 없다. 가게에 가려고 일어서니 기고만장한 '그 작자'가 묻는다.

'집에 가게?'

'가게.'

'가게? 가냐고!'

'가게!'

'벌써? 벌써 가게?'

'니미! 벌써는....... 아까부터 가게!'

그가 눈을 부릅뜬다.

.......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담배 가게 가게! 가게도 모르는 넌 조또 집에나 가게!"

돌아서 나오는데 뒤에선 죽여살려 고함이 터지고 술판이 엎어지고 난리다.

'로맹 가리는 알아서 뭐하게? 가게도 모르는게.'

 

통쾌해서 웃었지만 사실 나도 로맹 가리를 몰라서 가슴이 살짝 철렁했다.

내가 저 자리에 저 여인으로 있었으면 나는 약간 꼴통이니까 저 여인처럼 처참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로맹 가리를 몰라서 자존심은 좀 상했을 것이다.

너무 오랫 동안 독서와 담쌓은 데다 특히나 대학 졸업 후엔 외국작가들의 새 이름을 기억에 보태보질 않았으니

이제 외국이름은 외계어나 다름 없었다.

부랴부랴 그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어라? 아는 제목이 나오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또 쭈욱 검색해보니, 세상에!  그가 바로 에밀 아자르란다.

에밀 아자르라면 삼십년도 더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공쿠르상 수상작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아닌가

유일하게 두 번 공쿠르 상을 수상한 사람이 바로 로맹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란다.

그럼 나는 로맹 가리를 아는 건가 모르는 건가. 

남작가 글의 교훈을 잊고 에밀 아자르를 알았다고 휴우~ 하는 나는 여자를 깔보던 작자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속물인 건가?

계제에 로맹 가리의 책 한권과 에밀 아자르의 책을 한권 샀다.

인생을 좀 더 겪은 뒤에 읽는 "자기 앞의 생"은 한줄 한줄이 다 감동이다. 훌륭한 작가인 게 맞다.

어쨌든 소동 덕분에 로맹 가리를 읽게 되었으니, 그리고 에밀 아자르를 다시 읽었으니 고마운 생각도 든다. 

로맹 가리를 모른다고 무시당할 이유는 절대 없다. 몰라도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다.

그래도 로맹 가리를 알면 인생이 쬐끔 더 뿌듯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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