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시집 두 권을 같이 펴놓고 번갈아 읽었다. 한 권은 오년 전에, 또 한 권은 올해 출간되었다.
일부를 읽은 소감을 말하면 오년 전 시집의 시는 감정의 표현이 상당히 풍요하고 직설적인 편이고
올 시집의 시는 예외도 좀 있지만 좀 더 관념적이고 기교적이며 압축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평면적이고
다변이어서 그런지 나는 전자에 끌린다. 마음에 닿는 시가 참 많다. 나의 애정 리스트에 등재. 시인이 참 부럽다.
요즘은 내가 무엇에 좀 홀린 듯 하다.
예전 같으면 좋은 시를 보면 그저 감격스럽기만 했었는데 요즘은 좋은 한편으로 나도 모르게 시인에게 질시의 마음이 들며 풀이 죽는다.
여유로운 딜레탕트로서의 본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기분이다. 이런 현상은 생각보다 큰 고민과 부작용을 안긴다.
얼치기 시인의 흉내를 내며 종종 단어를 가지고 씨름 한다던가 하는 일이 있는데 업무가 한가한 날이라면 종일 이러고 있다가
저녁엔 결국 엉킨 실타래같이 복잡해진 머리속에 끊어지기 일보직전의 신경줄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음을 깨닫곤 한다.
더 이상 짧은 절 하나도 감당 못할 정도로. 이 허영, 큰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가 결국엔 냄비받침으로 밖에는 용도가 없을 허접한 책을 내는 이다.
경멸을 넘어 때로는 그 천연덕스런 뻔뻔함과 무지에 분노와 혐오의 염까지 인다.
나의 결벽증에 비추어 내가 책 내겠다고 섣불리 으스대는 일은 없겠지만 요즘 좋은 글을 보면 그 글의 향유만으로는 흡족하지 않으니
또 모를 일이다. 누가 정신 차리라고 따귀라도 올려주어야 할 텐데. 괜한 고민에 뜻하지 않은 짐이 생긴 기분이다.
그래도, 늦은 밤 좋은 시를 읽고 눈물이 돌듯 가슴이 뭉클하니 행복한 밤인 것은 분명하다. 참 잘났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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