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기 되도록 보기 좋은 꽃나무 한 그루 갖지 못했다
며칠 죽어 있으면 좋겠구나 하는 참인데
보니 저만치 기와가 다 삭은 구옥에
청아한 매화꽃 가지가 담을 타 넘고 있다
연일 사날은 궂고 바람도 거친 참인데
환한 꽃가지는 투철하게 이 집을 지켜낸 모양이다
저 이쁘고 믿음직한 꽃을
왜 나는 심지 않았던 걸까, 심지 않는 걸까
갈망의 반의 반 만큼만 되었어도
저만한 꽃나무 백 그루는 가졌을 터인데
고질이 되어버린 허언증처럼 내 마음도 나를 실소하며
그러려니 잠시의 허영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하여 봄만 되면 더욱 가난해지는 게 나의 삶이다
세상이 온통 꽃천지인데 내가 보탠 것은 한 가지도 없으니
봄날의 쓸모를 생각할 때 나는 역시나 언제나처럼
남에게 기대는 생임이 분명하다
저 집은 환한 꽃나무 한 그루 초병처럼 세우니
때묻고 옹색한 생활이 하나 부끄럽지 않아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의기양양 사람을 불러 모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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