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내내 게으름을 피우다가 무슨 변덕인지 어제는 보은까지 중거리 나들이를 하였는데
오늘도 그냥 보내기가 영 아쉽다.
낼부터 한동안은 치열하게 살아야 할 것이므로 오늘은 살짝 콧바람만 쐴 수 있는 곳이
어딜까나 하다가 동백정 동백이 생각났다.
동백꽃이 만발할 때 쯤이면 쭈꾸미가 제철이라 차가 밀려 번번히 포기한 곳이다.
지난 번 부산에 갔더니 동백이 핀 건 고사하고 이미 져서 툭툭 추한 모습이 가련하더만
그렇다면 이제 이곳에도 개화하지 않았을까 싶어 서천의 지인에게 연락을 해 보았더니
그저 한 두 송이 벙글 기미일 뿐 아직은 좀 더 기다려 주어야 겠다고 한다.
하늘도 낮고 황사바람도 불어 동백과 게으름이 겨루던 차에 이 소식을 들으니
나의 게으름이 드디어 정당성을 확보하고 달게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올핸 다른 곳 아닌 동백정 동백을 보고 싶다.
봄이 따스하면 꽃이 쭈꾸미를 앞질러 올지 모르니 제발 따스한 햇볕 환한 봄날이 좀 많기를 빌어본다.
오후에 멋없이 자란 느티나무, 자목련, 단풍나무의 허리를 댕강 처 버렸다.
쉽게 자라는 나무들이라 관리 않되는 한심한 뜰에 여름이면 키를 넘겨 전지도 못하는 상황이 해마다 반복이라
올해는 모진 맘을 먹없다.
베자마자 단풍나무 상처에서 눈물인지 피인지 뚝뚝 듣는다.
봄이라고 무한 솓구치고 싶어 수액을 뽑아 올리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무참히 살육을 당한 것이었다.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눈물이 나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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