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워져 버리고 있다.
내 삶의 어느 땐가 누군가는 가슴을 잡아뜯고 싶게 그리웠고
추운 가슴이 한 켠부터 녹아내리며 따뜻해지는 이였으며
눈물이 뚝뚝 듣게 밉기도, 청명한 하늘처럼 기쁨이기도 했었으리라.
그 누군가가 머물던 곳은 그의 온기와 냄새가 있었을 것이고
함께 한 몇 순간은 기억속에 고운 스펙트럼으로 남기도 했었을 것이다.
허나, 내 걸어온 길이 쉽게도 지워져 버리고 있다.
마치 가는 바람에 천천히, 그러나 곧 흔적없어져 버리는 연기처럼
뒤돌아보니 모든 게 아스라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이 이젠 마음이 아프지도 않다.
둔통 같은 게 가슴 저 밑바닥에서 간혹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도 묵지근해서 실체를 갸웃하곤 할 뿐이다.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애써 내 하찮은 삶을 새겨야 할까.
모처럼 하늘이 푸르다.
가을 하늘처럼 고운 파란 색이 아니라 눈밭 위에 서린 하늘빛 혹은 그믐달 빛이 그러할까 싶은 창백한 빛이다.
그 하늘아래 햇빛에 더욱 하얗게 바랜 벗은 나뭇가지가 종일 바람을 타고 있다.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여야 할까 생각해 본다.
오십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어도 그걸 정립하지 못했다.
나무 뿐이랴. 내 삶을 에워싼 것들 뿐 아니라 내 삶 자체도 늘 어리둥절한 난제인 것을.
아마도 죽는 날까지 풀지 못할 숙제겠지.
오랜 만에 아이들이 다니러 온다고 한다. 거의 석달 만인가 보다.
내가 낳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는 존재들, 그냥 그립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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