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 어찌 이 날 뿐이었으랴.
어쩌면 초여름 가랑비 속에서는 더욱 싱그러웠을 테고 쏟아지는 장대비 너머로 물보라 속에 뽀얗게 흐려지던 풍경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 곳에 온 이후 운동장 건너로 시선을 두어본 기억이 없다.
이층 창가에 서서 혹시 일별을 던져 본적이야 있었겠지만, 무정도 하여라, 나는 진정 이곳이 싫었던 모양이다.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지난 몇개월의 이 곳이 잔상으로도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거다.
이날도 운동장 저 너머를 보려 본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이 체육대회 날이었고 날이 개이기를 비는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안스러워 내 마음을 조금 보태보려던 것 뿐이었다.
미안해졌다. 자기 연민에만 빠져 그동안 그리도 인색했구나. 지척에 빨간 첨탑의 교회가 있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옆 연립주택의 이름을 알 턱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 중 몇이 깃들고 있는 둥지일지도 모르는데...
층층 구름이 낮아 아이들의 걱정이 한짐인데, 나는 오늘 남다를 것 없는 연무읍의 한 풍경에 비로소 눈이 뜨이고 마음도 퍼뜩 깨우쳤다.
마음 붙이고 생각보다 오래 이곳에 머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다음 날은 햇살 찬란한 가을 날이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 개봉에 즈음하여 지금 텔레비젼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하고 있다.
내가 그간 생각이란 게 조금 깊어졌는지 두 번 보게 되어서 그런지 영화가 처음 볼때보다 훨씬 의미있게 느껴진다.
요며칠 깨어있는 연습 중이고 깨어 있으니 뭔가 하는 일도 조금씩 생긴다. 죽음을 파고 들던 지난 몇 개월을 이제 헤어나려나...^^
'다시 새겨볼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르둥 라에 가고 싶다(14.11.19) (0) | 2014.11.19 |
---|---|
지켜만 보는 삶(14.11.17) (0) | 2014.11.17 |
너무 심상해서 조금 쓸쓸해지는 2014. 1.1(2014.1.1) (0) | 2014.01.03 |
지워진다는 것(13.12.27) (0) | 2013.12.27 |
깨우기가 쉽지 않다(13.12.13) (0) | 2013.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