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쯤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현관앞까지 눈이 수북이 쌓였다.
이미 반뼘은 쌓였는데 눈발은 여전히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고 내리고 있다.
아침이면 무릎까지 쌓일 것도 같다.
한밤에 눈을 치웠다. 현관앞은 비로 쓸고 대문 앞까지는 부삽으로 길을 냈다.
다리 짧은 강아지들을 위해 현관에서 개집까지 눈을 치웠고,
발 시릴 것도 아닐 터인데 겅중대며 좋아 날뛰는 운정이 집 앞 다져진 눈도 부삽으로 긁어내어 주었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눈이 금새 치운 자리 위에 착실히 쌓이고 있다.
눈을 치우는 고작 십여분 사이에 머리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다.
여섯 시에 문밖을 내다 보았다. 간밤보다 이삼 센티쯤 더 내렸다.
간밤에 치운 자리를 다시 치웠다.
잠깐 차를 끌고 가야하나 머리가 복잡했다가 어차피 끌고 갈 거 생각을 집어치웠다.
눈이 오는 날은 모든 기고만장한 것들이 다 기는 날이니,
처음 운전대 잡은 날보다 더 겸손해져서는 무사히 학교에 안착했다.
눈이 온 후는 세상이 한결 조용해졌다.
눈을 뒤집어쓴 만상이 수긋해보이고 대기도 잠잠하다.
하여 나도 숨결이 느리고 낮아진다. 삶같은 건 잠시 잊었다.
아이들만 즐거울 특권이 있어 빨개진 손으로 깔깔대며 눈을 뭉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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