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가을 들판에 서보다(13.9.30)

heath1202 2013. 10. 1. 01:30

까맣게 잊었는데, 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듣다보니 오늘이 September의 마지막 날이었군.

9월 30일 부터 10월 2일 까지 2박 3일 동안 아이들이 수련활동에 들어갔다.

담임도 아닌데 야영 업무 담당자라고 따라가란다.  야영 전 준비가 끝나면 막상 야영장에선 학생 지도 말고는 크게 업무적으로 할일이 없는데

날 괴롭히느라고 굳이 달고 간다.  대신에 밤 열시까지 야영장에 있다가 퇴근해 아침 여덟시 반까지 출근하는 걸로 했다. 

공주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더니 집에 돌아오니 열한시가 다 되어간다. 

도교육청 산하의 수련원이라 프로그램도 교관도 다 믿을만 하니 교사는 그저 임장만 하면 되는데도 한갖지게 쉬지 못하니 저녁에는 몸이 무겁다.

가기 전에 실컷 투덜댔으니 이제 기껏 2박 3일, 기껍게 아이들 잠자리 들기 전까지 함께 하고자 했다.

허겁지겁 돌아와 어둠속에 망부석이 된 울애기 당근이랑 사과랑 상추 챙겨주고, 개들 밥주고, 특히 운정이한테 호되게 물린 가여운 짱돌이는

특별식을 챙겨준다. 

 

수련원 도착 첫날 점심 식사 후 수련활동 첫 프로그램으로 하이킹이 있었다.  수련원에서 의병장 유영 장군 사당까지 왕복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인데

삼년 전엔 나도 발랄하게 걸어 갔으나 오늘은 예비차량을 끌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저만큼 앞세우고 나는 쉬며쉬며 낙오한 아이들을 한명씩

차에 실어가며 간다.  아무리 천천히 가도 금방 아이들 발꿈치 밟게 생겼으므로 아이들이 꽤 먼발치가 될 때까지 쉬며 따라잡길 반복하며 하염없이 간다.

올땐 몰랐는데 서향으로 기운 해를 마주보고 가노라니 들판이 하도 찬란해서 귀찮아도 자꾸 차에서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오늘은 분명 내 생애 자주 없는 눈부신 날이다.  구월 삼십일 공주 금홍동 들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 만다.

황금빛 햇살속에 아이들이 있으니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찬란한 햇살이 저 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 부어준다 자만하니

나 또한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누가 나를 보았으면 오? 왜 예뻐보이지 했을거다.  나 또한 남들을 보고 그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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