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가을인가 보네(13.9.11)

heath1202 2013. 9. 11. 03:24

혼자 커피를 마시노라니 하와이 생각이 난다.

커피가 하와이 코나 커피라서 그런가?

커피를 몇 봉지 가져왔으니 다 먹을 때까지 종종 그럴 것이다.

취향이 아닌 캐릭터들이라 챙겨보지 않는 "하와이 5-0"도 하와이 생각을 부추킨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잡히는 눈에 익은 풍경들, 와이키키 해변과 다이아몬드 헤드,

내 숙소 길건너에 있던 요트 정박장 등등, 그리고 땡큐보다 더 자주 듣고 쓰던 '마할로'같은 것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삼주 남짓 폐인처럼 처박혀 지내던 생활이어서 기억도 추억도 없을 줄 알았다.

열심히 부대꼈다면 그리움이 더 했겠지만 이만해도 과하다.

 

인터넷을 하다 프라하의 바츨라프광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두 번 다 주마간산으로 지나친 곳이지만 이곳에서부터 성으로 가던 길이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이라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골목들을 지나 카롤교를 건너고 카프카 문학관을 들르고 그리고 성에 올랐었다.

옛 사진 뭉치를 뒤져보면 아래 사진속의 젊은이들이 서 있던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삼십대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을텐데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를 모르겠다.

"프라하의 봄"때 희생된 젊은이를 기리던 자리였지. 청년이 담긴 흐린 흑백사진이랑 작은 십자가랑 꽃 몇송이가 놓여 있던.

가을이 오면 더욱 가고 싶은 곳이 유럽이다. 쓸쓸한 겨울이 오기 전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카롤교 위에 서서 블타강을 내려다보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파리에서 룩상부르공원에 앉아 있다가 문득 옅게 노랑물이 들어가는 나무를 보며 감상에 잠겼었다. 

방학이 끝나가는 팔월의 끝자락이었고 툭툭 지는 낙엽을 보고 돌아가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  지금 쯤이면 그럴까?

늘 손에 닿지 않는 걸 꿈꾸는 걸 보면 내가 허영이 많긴 한 모양이다.

 

그립고 또 그리운 곳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가본 곳도 그립고 가보지 않은 곳도 그립고, 그저 닿지 않는 것은 다 그리움인 것 같다.

 

(사진출처: 레이디 경향 기사, 사진: 김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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