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 만에 자판 앞에 앉아 본다.
방학의 마지막 날이다.
여행 후 줄곧 방과 후 활동으로 단 하루를 쉬고, 마지막 날까지 근무로 방학을 마무리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방학이 다한 아쉬움도 없고 담담히 새학기를 맞을 수 있을 듯 싶다.
남들에겐 더욱 더 안타깝게 달디달 하루 남은 방학을, 나는 2학기 시간표를 만들어가며 보람을 느껴볼까 보다.
결코 남보다 조금도 더 힘써 일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한번 그래 볼까 싶다. ㅎㅎ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하루 쉬고 바로 방과 후 활동에 투입되어 더위 먹고 살짝 몸살도 났었지만,
여행이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던지라 무더위에도 이만하면 편하다 했다.
또한 지독히도 무더웠으니, 아침 저녁 조금 시원해지고 보송해진 것만으로 가을을 기대하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벌써 휴식같은 기분이다.
시원하기만 하담사 어떤 고난이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교무실엔 나 혼자 뿐이다.
남들이 마지막 느긋한 아침 잠을 누릴 시간, 헐떡이며 간신히 시간 대어 출근했지만 마음이 이리도 편안할 수가 없다.
간밤에 좋아하는 미드를 시청하느라 세시도 훌쩍 넘어 잠자리에 든데다 그간 지적활동을 접은 탓에 포맷이 된듯 텅빈 머리 때문에
난독증 환자처럼, 혹은 문맹자처럼 서류의 글자가 판독이 잘 안 되어 워밍엎 삼아 잠시 되지 않는 글을 자판 연습하듯 두드려 보는 건데,
그럼에도 바깥 수풀에서 쏴아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랑 낮은 선풍기 소음이랑 더위에도 운동장 끝에서 풀을 깎으시며
나보다 더욱 개학 준비에 열심이신 주사님의 예초기 소리, 등유냄새가 다 좋다.
방학 마지막 날, 설령 아무 일 않고 앉아 있는다 해도 이렇게 학교를 숨숨 느끼는 것만으로 개학이 한결 여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슬슬 시간표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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