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중 가장 맑은 날이다.
밖에선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가 싸르륵 거리고, 모두가 출장이라 텅빈 행정실을 지키고 계시는 주사님은 그동안의 하모니카 독학 결과를 망라하고 계시다.
일하시다가 쉬는 틈틈이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연습하시더니, 오빠생각부터 대여섯 곡을 큰 실수 없이 불어 내신다. 부럽다.
나는 여유없는 생활에 늘 허둥대다보면 한 학기가 훌쩍 가버리고 손에는 쥔 것이 없는 느낌이어서 허탈한데 저분은 저렇게 확실한 것을 만들어내셨구나.
2층 끝 도서실에서는 사서 선생님이 한학기 헝클어진 도서정리를 하고 있고 나는 빈 교무실에서 교육청 전화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며 자잘한 업무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하모니카 연주도 들리고 가끔 전화벨이 울려도 사람의 소리가 없으니 참 적막하다. 제일 소란스런 게 사람이로구나 다시금 느낀다.
어제 우리 학교는 방학식을 했고 아이들과 나를 제외한 전교사가 안면도로 사제동행 1박 2일 체험학습을 갔다. 애들 인솔이 어찌 되었든 피곤한 일이라 담임이
아니라면 학교 지키는 게 속편한 게 솔직한 내 심정인데, 그래도 안면도는 가고 싶었었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참혹한 소식을 들었다. 공주사대부고 아이들이 다섯명이나 실종 되었다는.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억장 무너지는 슬픔을 안고 부모는 어찌 견디며 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고 우울했다.
사고 지점이 우리 아이들이 체험학습 간 곳하고는 지척이었다. 통화를 해보니 아이들을 바다에 내보내지 않고 숙소에 딸린 조그만 풀장에서 물놀이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한다.
월요일에 짐꾸려 화요일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선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아침 비행기다.
가기 전에 처리할 해두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장마 동안 잡초가 웃자라 호랑이가 새끼치게 생긴 화단인지 잡초밭인지 분간 안가는 뜰의 풀도 조금 뽑아 주어야 하고, 토끼는 엄마한테 데려다주어야 하고, 일당 오천원으로 꼬드긴 앞집 중학생에게 세마리 개와 얼굴 익히기 및 밥주기 지도 시간을 가져야 하고 ,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하고 대청소도 해야하고, 등등. 또 언제부턴가 청소같은 일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자 다짐한 뒤로 집안 꼴이 엉망이다. 떠난 뒤는 깔끔해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니 모처럼 청소를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
떠날 때엔 늘 "다음 방학엔 허리가 아프게 뒹굴거리며 게으름의 정수를 보이겠노라" 다짐을 하건만 번번히 고단한 여행길이다. 이번엔 페낭과 코타키나발루, 그리고 잠깐 다녀올 앙코르 유적지가 주목적지다. 뭘보고 체험해야 할지는 그곳에 가서 결정할 일. 게을러서 계획같은 건 짜지 않으니...
벌써 기운이 빠지지만, 감사히 생각하고 힘을 내야 겠다.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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