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전라북도

고창 선운사, 꽃 사태(13.9.21)

heath1202 2013. 9. 24. 05:32

솔직히 순응형 인간이 아닌 나로서는  조촐하게 명절을 쇨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나의 상황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

가족은 단촐한데다 가문의 전통과 내력을 따지지도 않고 구성원들의 성향이 한결같이 개인주의적이어서 잘할 것이  아니면 서로간의 일에 일체 간섭이 없다. 종횡 간이 다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나는 남편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 누구하고도 언성을 높여보거나 감정이 기억할 만큼 상해 본적이 없다.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얻어지는 이 평화가 나는 좋다.  늘 예의 바르고 적당한 만큼만 배려하고 챙기며 내 마음에 안들면 남의 일이려니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고 그것이 먹혀 온 것을 보면 다른 구성원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절 전날 올라가서 명절 당일이면 내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짧은 시간동안에는 나 나름대로 기껍게 헌신하고자 노력한다.  


올핸 추석 휴가가 길어서 솔직히 진력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길이 막힐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도(우려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이 되었다.) 고창 선운사로 꽃을 보러 갔다.  여러 해 동안 연례 행사처럼 선운사에 갔지만 이렇게 절묘하게 때가 맞아 떨어진 적이 없었다.  구십 퍼센트의 개화다.  절정이었다.

그런데 꽃이 많아도 너무 많다.  조금 좋고 많이 아쉽다.  옛날에는 어둑한 나무 그늘 밑에 작은 무리와 군락을 이루어 빛나고 있었는데 이제는 붉은 들판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밤하는 별을 보는 듯한 애틋함이 아닌, 그냥 우와, 많다,라는 탄성이 먼저 나온다.  인공성이 주는 단조로움과 물량공세로 인한 가치의 저하다. 부디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그래도 꽁을 보는 것은 좋다.  사람들도 많이도 나왔다.  일상에서 꽃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기를.


내소사에 밥먹으려고 가다가 나래비 지은 차의 행렬에 식겁하고 되돌려 나와 격포에 갔는데 이곳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전라도로 추석 쇠로 내려온 사람들은 죄 변산반도에 집결한듯.  식당 찾아 쫄쫄 굶었는데도 식당이 하도 어수선해 맛도 모르겠다. 


평화롭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길을 나서길 잘했다. 

 


초입에서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단풍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