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집들이에 갔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에도 힘닿는대로 화초를 가꾸고 주말 농장을 일구더니 결국 시내 가까운 시골에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집터도 딸린 텃밭도 넓어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한숨이 나오는데 친구가 하도 기뻐하니 덩달아 나도 부러워졌다.
건축업자도 잘 만나고 집 짓는 내내 드나들며 세심하게 관여할 수 있었던 터라 건축업자가 장삿속으로 뚝딱 지어 판 것과는 많이 다르다.
주인 나름의 숙고가 엿보이는 공간들과 설비들이 편리하면서도 아기자기 이쁘다.
이제 그집이 그녀의 마지막 집이겠지. 아직은 조금 생경하지만 앞으로 주인의 손때가 묻고 온기가 스며
주인의 삶을 따뜻이 보듬을 든든한 울이 되어 주겠지.
뜰에 막 이식한 화초와 수목들도 한 두해 지나면 원래 제 자리였던양 풍경 속에 스며들테고,
앞마당 개는 마음 따뜻한 주인을 만나 주인과 함께 늙어가 것이다.
나는 한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주변의 동료들, 지인들, 벗들이 모두 청약저축을 들고 아파트를 분양받고 또 평수를 늘려 이사하는 동안,
나는 결혼 일년 만에 마련한 시골집에 들어와 이십오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있다. 결혼 일년만에 마련한 집이 오죽했으랴.
날림의 슬라브집을 여기 저기 참 많이도 손 보아가며 이제껏 살아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한편 내 삶이 실핏줄 내린 진짜 내집이기도 했다. 싸구려이거나 말거나 진짜 내 삶이 배인 안식처 말이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 나이브 하기 이를 데 없고 게다가 게으르기까지 하다보니 이 나이가 되어도 나는 숨겨진 든든한 통장 하나 없이
아직도 한달 벌어 한달 사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신에 많은 고민을 벗고 산 것도 사실이다.
밤 늦도록 맘대로 서성여도 괜찮았고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는 뜰에 개들을 놓아 먹여도 되었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하고 싶은 일에 돈 아끼느라 가슴 아파하며 포기하며 살지 않았다.(오해없기를. 나는 집욕심 뿐 아니라 좋은 차, 좋은 옷,
애들 사교육 같은 것에도 욕심이 없었다. 나의 욕망의 크기가 크지 않았으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끔 남의 목돈에 부러워지는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잠깐일 뿐, 돈 모으는 것을 빼면 남 안하는 것을 누린 것이 많았다.
요즘 들어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든다.(돈 좀 모아 놓을 걸. 이제야 걸리네.)
지금 집도 그냥 살자면 못 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은 생은 새로운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무수한 결점을 안고 지금껏 이십오년을 살아온 집 말고 다사로운 작은 집에서 작은 뜰을 가꾸며 살고 싶다. 작지만 답답하지 않고 아늑한 집,
노인 둘이 간수하기 버겁지 않은 집, 깊지 않아 바람이 잘 통하고 양지바른 집, 쪽마루가 있는 집, 봄밤이면 이웃 솔숲으로부터 소나무 냄새가 깔리는 집.
퇴직을 몇 년 앞으로 예정해 놓은 요즘은 자주 머리 속에 작은 집 한 두채씩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양지바른 묏자리를 보면 부러워 넋을 놓지만 저승의 기약이 없는 나는 내 생의 마지막이 될 집에 없던 집착을 조금씩 키워가나 보다.
어떤 때는 담담하다가 불현듯 공포로 다가오는 노쇠의 공포가 편안한 집에서는 조금은 다독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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